뉴올리언스 세인츠
1. 개요
NFL의 미식축구팀. NFC 남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뉴올리언스.
Saints는 영어로 '성자들'이며 가톨릭 신자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뉴올리언스 지방인 것과 뉴올리언스 지방에서 재즈로 편곡되어 크게 유행하였던 가스펠인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에서 따왔다.
팀의 로고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미국에 팔리면서 미국에 편입된 루이지애나의 역사를 반영하여 프랑스 혁명 이전의 프랑스 국기였던 백합무늬(Fleur-de-Lis)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팀의 색상은 가톨릭을 의미하는 빛바랜 금색(Old Gold)와 이 동네의 가장 큰 산업인 석유산업을 의미하는 검은색(Black).
2. 초기
1960년 발족된 라이벌리그 AFL(American Football League)은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에 맞서기 위해 NFL은 리그 규모를 늘려나가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흐름에 따라 대학풋볼이 정착된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선 슈퍼돔 건립자 데이브 딕슨 등을 중심으로 프로풋볼팀 창단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후 지지부진해지다가 1966년부터 NFL-AFL 간 합병 협상으로 피트 로젤 커미셔너가 풋볼팀 창단을 지지하는 루이지애나 출신 상/하원의원들과 로비를 벌인 끝에 동의했고, '모든 성자들의 대축일 (All Saints Day)'인 1966년 11월 1일에 정식 창단했다. 초대 대주주는 휴스턴 향토 석유업자 존 W. 메컴 주니어, 운영부사장 겸 단장은 버트 로즈, 감독은 톰 피어스이며, 선수진은 쿼터백 게리 쿼조, 와이드리시버 존 길리엄, 풀백 짐 테일러, 좌측 수비엔드 덕 앳킨스 등이었다.
1967 시즌부터 참가 후 동부 컨퍼런스 소속이다가 1970년 NFL과 AFL이 통합된 이후에는 NFC 서부지구에 소속됐다. 대체 미국 동남쪽에 위치한 팀이 어쩌다가 서부지구에 소속되었는지 의아할 수 있겠지만 내셔널 풋볼 리그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서부 지구는 팀 자체가 별로 없어 지구(Division)를 짤 팀 수가 모자라다보니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였던 애틀랜타 팰컨스와 더불어 30년 이상을 서부 지구에 소속되어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는 2002년 4지구로 재편되고 나서야 남부지구로 소속이 되었다.
리그 초창기엔 약체팀으로 허겁지겁 선수들을 긁어보으다 보니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 팀의 영구결번은 현재 8번의 후술할 아치 매닝, 31번의 풀백 짐 테일러, 81번의 수비엔드 덕 앳킨스 이 세 번호인데 그 중 테일러는 1시즌, 앳킨스는 3시즌 고작 세인츠에서 뛰었을 뿐이지만 리그를 대표하던 스타선수가 이 팀을 택해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해준 것을 보답하는 의미로(...) 영구결번이 되어 있을 정도로 선수들 사이에서조차 인기도 없는 그야말로 쩌리집단(...)이었다. 매닝 입단 전까지 명경기라고는 원년시즌 첫 홈경기인 LA 램스전 때 존 길리엄이 킥오프를 받아 94야드를 뛰어 터치다운을 했고, 1970년 시즌 때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전 때 경기종료 2초 전에 키커 톰 댐시가 최고기록인 63야드를 차내 필드골을 성공시켜 19-17로 이긴 게 전부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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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된 미시시피대 출신 아치 매닝(위의 사진)[8] 이 쿼터백으로 등장하면서 팀은 최초의 프랜차이즈 슈퍼스타를 갖게 된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아치 매닝의 원맨팀. 1972년에는 패스 시도, 패스 성공, 패스 야드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지만 성적은 2승 11패 1무(...). 1975년에는 한 시즌 동안 쌕을 무려 49번을 당하는 등 이래저래 몸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던 안습의 존재[9] . 1979년 팀 역사상 처음으로 5할 승률을 내긴 했지만 1980년 초전부터 다시 14연패를 하는 등 줄곧 약체팀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10][11] . 세인츠의 성적이 부진한 해에는 스포츠 뉴스를 보면 팀 이름에서 S를 빼고 'Aints'라고 쓴 종이봉투에 눈만 구멍을 뚫고 뒤집어 쓴 관중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1980 시즌 때 거듭되는 연패에 빡친 전담 라디오 캐스터 버나드 딜리베르토의 제안으로 생긴 전통 아닌 전통이다(...)[12] .
1981년 드래프트는 2006년 드래프트에 버금가는 세인츠 역사에 남을 명드래프트로 꼽히는데 전체 1라운드 1위로 하이즈먼 트로피[13] 수상자인 러닝백 조지 로저스(사우스캐롤라이나대)[14] , 2라운드에서 이후 팀의 중심이 되는 후술할 라인배커 리키 잭슨, 3라운드에서 타이트 엔드 호비 브레너, 10라운드에서 풀백 호키 가얀[15] , 12라운드에서 주전급 수비 태클 짐 윌크스를 뽑는 등 그야말로 알짜 드래프트에 성공......했지만 이제는 아치 매닝이 이전과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되며 급격하게 노쇠화, 1982년 미네소타 바이킹스로 이적하게 된다. '프랜차이즈 없는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불렸던 아치 매닝의 시대는 이렇게 저물었다.
3. 짐 E. 모라 시대
처음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1985년, 지역 자동차 딜러 톰 벤슨이 7천만 불을 주고 팀을 매입하면서 새 역사가 쓰여졌다. 벤슨 구단주는 인수 당시 팀이 플로리다 주 잭슨빌로 옮긴다는 얘기를 듣고 이전 시 석유산업에 의존해 온 뉴올리언스가 망하게 된다고 여겨 이를 행했다.
그는 인수 후 1986년에 팀 개선을 단행하였는데, 신임 단장직에 전 시카고 베어스 단장 짐 핑크스를, 감독직에 USFL 팀 필라델피아 스타즈의 감독이던 짐 E. 모라를 각각 선임했다.
모라 감독은 스티브 시드웰 DC와 보조를 맞춰 '3-4 디펜스'를 도입해 공격보다 수비를 앞세운 짠물 풋볼을 팀에 구현해냈고, USFL 때 선수였던 샘 밀스와 본 존슨 등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이에 따라 1987 시즌에 팀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10년 동안 감독을 하면서 4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거두는등 세인츠의 약체 이미지를 벗어던지는데 공헌했다.
이 시기의 세인츠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돔 패트롤(Dome Patrol)'이라 불리는 라인배커 4인방[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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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샘 밀스[17] , 팻 스윌링[18] , 리키 잭슨[19] , 본 존슨 [20] .
이들은 1986년부터 1992년까지 같이 활동했으며 총 18번 프로볼에 선정되었고 총 10번 올프로에 선정되는 등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비력을 보여주어 NFL Network가 선정한 가장 압도적이었던 수비유닛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1992년에는 네 명이 동시에 모두 프로볼에 선정되어 프로볼 NFC팀 수비 두번째 줄이 모두 같은 팀 소속 선수들로 채워지는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공격으로는 센터 조엘 힐겐버그, 공격 가드 짐 돔브로우스키, 공격 태클 스탠 브록, 와이드 리시버 에릭 마틴, 퀸 얼리, 러닝백 달턴 힐리아드, 풀백 크레이그 헤이워드, 타이트엔드 호비 브레너, 수비 엔드 웨인 마틴, 수비 태클 짐 윌크스, 코너백 데이브 웨이머, 세이프티 진 앳킨스, 브렛 맥시 등 준올프로급의 좋은 선수들이 로스터를 꽉꽉 채우고 있었지만....
이전의 아치 매닝 시대가 아치 매닝과 21명의 벌떼들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쿼터백 외에 아무도 없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오로지 쿼터백이 제대로 된 단 한명의 조각이 맞춰지지 않다보니[21] 플레이오프 1회전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여러모로 안습...
1992년 팻 스윌링이 디트로이트 라이언스로 트레이드되면서 돔 패트롤은 해체되기 시작하였고[22][23] 마지막 남은 샘 밀스조차 1994년 캐롤라이나 팬서스가 창단되며 팀을 떠나게 되며 돔 패트롤은 최종적으로 해체됐다.
이후 짐 모라는 1995 시즌에 뜬금없는 활약을 해준 러닝백 마리오 베이츠와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레전드 코너백 에릭 앨런의 프로볼급 활약에 힘입어 7승9패로 그나마 선방했지만 1996년 초반 2승 6패만을 기록하는 극심한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플레이오프 첫 승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이루지 못한 채 사임하게 된다.
4. 마이크 딧카 시대
1997년에는 12년 전 시카고 베어스의 우승감독 마이크 딧카를 모셔왔지만, 약화된 전력을 올려놓지 못하고 승보다 패가 많은 시즌을 계속하던 중 1999년 NFL 역사에 길이남을 드래프트를 하는 것으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1999년 드래프트 당시에는 1998년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자인 텍사스대 출신 파워백 리키 윌리엄스와 마이애미대에서 2년 연속 1000야드 이상을 기록한 에드제린 제임스의 Top 2 러닝백이 리스트에 있었는데, 이 중 4번 픽을 가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는 '손이 더 크다'는 이유로 에드제린 제임스를 뽑자[24] 딧카는 리키 윌리엄스를 뽑기 위해 세인츠가 가진 그 해의 6개 픽 모두를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5번 픽과 바꾸기로 한 것[2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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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 윌리엄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드레드펌 가발을 쓰고 입단을 환영하는 마이크 딧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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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 결정은 엄청나게 비난을 받아 ESPN의 표지에 이런 사진이 실릴 정도로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해 정작 딧카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3년 만에 해고됐다. [27]
5. 짐 하슬렛 시대
2000 시즌에 전 피츠버그 스틸러스 DC 짐 하슬렛[28] 이 감독으로 부임해 저니맨 쿼터백 제프 블레이크, 리키 윌리엄스, 리시버 조 혼[29] 의 공격진과 수비 태클 라로이 글로버와 대런 하워드, 수비 엔드 조 존슨, 세이프티 새미 나이트 등 을 이끌고 감독을 맡은 첫 해 11주차까지 7승 3패의 호성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었다. 11주차 경기에서 10경기만에 1000야드 러싱을 기록한 리키 윌리엄스를 부상으로 잃은 것이 안타까웠지만, 급한대로 베테랑 러닝백 테리 알랜을 데려와 긴급수혈을 한 상태로 세인츠 팬들은 8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의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12주차 오클랜드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초반 쿼터백 제프 블레이크를 발 골절상으로 잃고 만다. 남은 스쿼드는 전년도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그린베이 패커스에 드래프트되었다가 1년만에 방출 당해 시즌 시작 직전 세인츠에 입단한 백업 쿼터백 애런 브룩스뿐[30] . 비록 그 경기는 졌지만 놀랍게도 남은 경기를 3승 2패로 이끌며 대부분 포기하고 있었던 플레이오프에 팀을 진출시키게 된다. 게다가 전 해의 슈퍼볼 우승 팀이었던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꺾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플레이오프 첫 승을 팀에 선물하기까지!!!''' 당연히 세인츠 팬들은 그토록 오랜동안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신데렐라 쿼터백의 등장에 대환호를 보냈고 팀도 그를 중심으로 팀을 이끌어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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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혼, 애런 브룩스와 더불어 짐 하슬렛 시대의 세인츠를 대표하는 러닝백 듀스 맥켈리스터[31] . 태클의 충격으로 헬멧이 벗겨져 나갔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한 야드라도 더 전진하기 위해 승부욕을 불태운 터프가이였다.
그러나 2001 시즌부터 팀이 남부 지구에 소속되자 같은 디비전이 된 막강한 수비력을 자랑하던 탬파베이 버캐니어스와 당시 한창 물이 오른 마이클 빅이 이끄는 애틀랜타 팰컨스의 위세에 밀려 잘나가다가도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번번히 실패하는 시즌이 계속되게 된다. 정규시즌 때 부상없이 1245야드를 달려준 리키 윌리엄스의 활약에 기존의 조 혼 + 저니맨 리시버 윌리 잭슨의 활약에 힘입어 안정적인 게임 매니지먼트를 바탕으로 7승4패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후 수비진이 갑작스레 난조를 보이면서 거짓말처럼 내리 5연패로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32] [33] .
2002 시즌에 훗날 팀 프랜차이즈의 모든 러싱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는 러닝백 듀스 맥켈리스터를 중심으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제롬 패이썬과 드래프트에서 돈테 스톨워스 리시버 둘을 영입, 조 혼과 더불어 리시버 삼각편대를 운용하도록 해 주어 9승7패의 좋은 성적을 내었지만 버캐니어스와 팰컨스에 밀려 디비젼 3위가 되어 역시 플레이오프를 못 나갔고, 2003 시즌에 애런 브룩스가 24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는 동안 단 8개의 인터셉션만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주전 수비 라인인 엔드 대런 하워드와 태클 그래디 잭슨, 라인배커 세드릭 하지가 부상으로 빠지며 역시 수비가 붕괴하며 8승 8패로 아깝게 플옵 문턱에서 좌절했다. 2004 시즌 들어 그동안 그나마 버텨 주었던 수비진들의 주역들이 하나하나 팀을 떠나면서 꽤 괜찮은 공격진임에도 따라와 주지 못하는 수비진이 약점이 되어 '''또''' 8승 8패로 주저앉았다.
그야말로 그저그런 어중간한 팀으로 진행하던 도중인 2005년 팀에 큰 전기가 오게 된다.
6. 카트리나
바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사건. 이 때문에 뉴올리언스가 물바다가 되어 수십만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홈구장 루이지애나 슈퍼돔도 파손되는 사고를 맞았다. 이러한 이유로 2005년 세인츠는 홈구장 슈퍼돔을 사용하지 못하고 남의 팀 구장에서 홈경기를 하는 홈리스팀으로 1년간 참여하게 된다. 당연히 성적은 3승 13패로 좋지 못했고, 이미 전부터 관중동원능력도 하위권을 맴돌자, 벤슨 구단주는 사업 초창기에 성공을 거뒀던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로 연고이전을 하려다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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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로 인해 지붕의 반 이상이 날아가버린 슈퍼돔
7. 션 페이튼 - 드류 브리스 시대
하지만 카트리나 항목에도 나와있듯 이때 뉴올리언스의 재해복구에 대한 뉴올리언스 지역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벤슨 구단주는 논란을 가져온 '샌안토니오 연고이전' 카드를 버리고 시즌이 끝난 후 연고지 잔류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하슬렛 감독 대신 댈러스 카우보이스 쿼터백 코치를 역임했던 43세의 젊은 코치 '''션 페이튼'''을 헤드코치로 선임하고, 당시 FA최대어였던 샌디에이고 차저스의 쿼터백 '''드류 브리스'''를 영입하였으며 또한 드래프트 전체 2위로 USC의 대학 최고 러닝백 레지 부쉬[35] 를 지명하는 등의 팀 체질 개선에 나선다.
'''그리고 이 선택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헤드코치 션 페이튼은 공격적인 팀 컬러로 개편해 드류 브리스 중심의 패싱어택 전략을 핵심으로 삼고, 드류 브리스는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불화로 이적해온 울분을 토해내듯 강력한 패스공격으로 팀을 주도했고 시원시원한 공격적인 팀 칼라덕에 실의에 빠져있던 뉴올리언스 시민들에게 재밌는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뉴올리언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는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자인 러닝백 레지 부쉬가 가장 큰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중요한 잭팟은 7라운드 마지막에서 네번째, 대개는 버려지는 픽에서 뜬금없이 튀어 나왔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의 영화감독 등을 배출한 무명의 홉스트라 대학 출신으로, 193cm의 큰 키에 캐칭 능력은 괜찮았지만 타이트엔드로 뛰기에는 몸이 가늘고 와이드 리시버로 뛰기에는 느려 드래프트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 받던 말퀘스 콜스턴이 그 주인공.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MBA를 받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로 입단 첫 해부터 브리스의 패싱 전술을 완벽히 이해하여 그의 No.1 타겟이 되었던 것. 당시 세인츠의 리시버진은 노쇠해가는 조 혼, 신인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맞아 빅마켓 팀으로의 이적이 확실하던 돈테 스톨워스 뿐이어서 브리스의 파트너가 되어줄 리시버가 필요해지던 생황이었는지라 그야말로 가뭄의 비. [36] 2006 드래프트는 그 외에도 세인츠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라고 불리우게 되는데 레지 부쉬와 말퀘스 콜스턴 외에도 2라운드에서 프로볼 세이프티 로먼 하퍼, 4라운드에서 4회의 AP-All Pro, 6번의 프로볼에 빛나는 가드 쟈리 에반스, 현재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서 주전 수비엔드로 뛰고 있는 5라운드의 랍 닌코비치[37] , 2016년 현재도 주전으로 뛰고 있는 공격태클 자크 스트라이프를 역시 7라운드에서 뽑는 등 그야말로 드래프트를 대박을 내게 된다.
홈리스팀으로 3승 13패를 거둔 다음 2006년 9월 25일, 카트리나에 의해 지붕이 반 정도가 날아가는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 이재민 수용시설로 사용되느라 홈구장으로 사용되지 못했던 루이지애나 슈퍼돔이 개장/보수 이후 최초로 재개장하는 첫 홈 경기가 열렸다. 오프닝 기념 공연이 무려 U2와 그린데이로, 원래 스코틀랜드의 펑크 밴드 The Skids가 부른 'The Saints are coming'을 불러 세인츠가 다시 돌아왔음을 알렸다[38] . 오프닝 경기의 첫 상대는 숙적 애틀랜타 팰컨스. 오랜 라이벌을 맞은 홈 첫 경기에서 팰컨스의 첫 공격을 무사히 막아내고 펀터 마이클 코넨의 첫 펀트를 세이프티 스티브 글리슨이 블록! 이를 코너백 커티스 데로치가 그대로 터치다운에 성공하여 재개장 이후 첫 터치다운을 기록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있었다.[39] 결국은 23-3으로 첫 홈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개막 3연승에 성공, 이 여세를 몰아 이후 시즌 10승 6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세인츠는 플레이오프에서도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꺾고 최초로 컨퍼런스 결승에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비록 그 해 슈퍼볼에까지 진출하게 되는 브라이언 울라쳐, 랜스 브릭스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 베어스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주저 앉게 되지만 다가올 시즌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2007년, 2008년부터는 그간 팀 공격의 중심이었던 러닝백 듀스 맥켈리스터가 고질적인 무릎 전방십자인대 부상이 악화되며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그 이외의 러닝백이라고는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 러닝백으로서보다는 주로 펀트 리터너와 슬롯 리시버로 더 자주 활용되었던 레지 부쉬, 백업 전문 저니맨 아론 스텍카, 그리고 언드래프티 출신으로 러싱 보다는 패스캐치에서 재능을 보여 프리시즌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피에르 토마스 뿐. 이에 기존의 패스 위주의 공격 전략을 더 극대화, 마치 1980년대 포반의 샌디에이고 차저스의 3년 연속 지구우승을 이끌었던 코치 돈 코렐이 사용했던 'Air Coryell'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이기까지 한 패스 위주의 전술로 팀의 플레이북을 바꿔버리게 된다. 비록 각각 7승 9패와 8승 8패에 그쳤지만 공격진과 수비진의 세대교체를 이루며 숨을 고르던 세인츠는 드디어 2009년 시즌을 맞는다.
7.1. 2009 시즌 : 감동의(?) 슈퍼볼 우승[40]
사실 2009 시즌을 맞는 세인츠는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우선 부상에 시달리던 듀스 맥켈리스터가 샐러리 감축을 위해 방출되었다[41] . 프로볼러 우측 공격태클 자말 브라운 역시 무릎의 십자인대 부상이 악화되어 시즌을 통채로 쉬게 되었고 역시 샐러리 감축을 위해 프로볼 출신의 풀백 마이크 카니 역시 방출을 통보하게 되었다. 게다가 수비진에서도 주전 공격 태클인 브라이언 영이 부상이 심해지며 역시 방출되었고 그나마 쓸모있던 코너백 마이크 맥켄지는 슬개골 골절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있다가 은퇴하는 등 이름값 있는 플레이어들의 전력유출이 꽤 있던 상황. 그럼에도 전력 보강이라고는 공격/수비 코디네이터를 피트 카마이클과 그렉 윌리엄스로 교체한 것, 선수로는 블로킹백 히스 에반스[42] , 전시즌 버펄로 빌스에서 부상으로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된 코너백 자바리 그리어, , 그리고 미네소타 바이킹스에서 이젠 한물 갔다는 소리를 들으며 재계약 하지 않았던 세이프티 대런 샤퍼 정도였으니 팬들은 이번 시즌도 종이봉투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어려울 수록 리더십이 빛을 발한 브리스를 앞세운 막강한 패싱어택과 피에르 토마스,레지 부쉬의 러싱 공격, 말퀘스 콜스턴, 데버리 헨더슨, 로버트 미쳠, 뉴욕 자이언츠에서 프로볼에 뽑힐 정도였지만 부상으로 2007년 시즌을 통채로 날려 먹으며 몸값이 대폭락해서 거의 거저 데려온 타이트엔드 제레미 쇼키 등의 리시버진, 공격태클 존 스틴치쿰, 가드 자리 에반스, 센터 져너쓴 굿윈 등의 강력한 공격라인이 매경기 평균 35.8 득점의 엄청난 공격력을 선보였고, 라인배커 져너쓴 빌마와 스캇 후지타[43] , 수비엔드 윌 스미스, 찰스 그랜트, 수비 태클 세드릭 엘리스, 베테랑 세이프티 로먼 하퍼와 데런 샤퍼를 앞세운 수비진도 끈끈한 조직력을 발휘해 상대를 평균 21점으로 묶는 등 의외로 활약하여 개막전 이후 무려 정규시즌 13연승의 구단 기록을 쓰게 된다. 비록 이후 플옵이 확정되고 1 시드도 거의 확정되어 체력을 아껴가며 경기를 한 덕에 내리 3연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최종 성적 13승 3패로 당당히 NFC 전체 1위를 지켰으며 플레이오프에 가자마자 다시 화력이 되돌아와 애리조나 카디널스를 45:14로 대파하여 공격력과 수비력 모두 건재함을 알렸다. 이어진 슈퍼볼 진출이 걸린 컨퍼런스 결승전의 상대는 브렛 파브와 아드리안 피터슨이 이끄는 미네소타 바이킹스. 역전과 동점을 거듭한 연장전 명승부 끝에 가렛 하트리의 끝내기 필드골로 팀 역사상 최초로 44회 슈퍼볼에 진출했으며 수퍼볼에서도 페이튼 매닝이 이끈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를 31:17로 격파하고 창단 최초로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다.
승부에 쐐기를 박은 것은 시즌 내내 세인츠의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코너백 중 거의 무명이었던 본거지 루이지애나 출신의 젊은 2년차 코너백 트레이시 포터가 페이튼 매닝의 마지막 드라이브를 인터셉션 후 터치다운을 기록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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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L.com에서는 NFL 역사상 가장 위대한 쿼터백 중 한명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토리에게 졌다.라고 평하였다.
카트리나 후유증에 시달리던 뉴올리언스 시민들을 풋볼팀의 승리로 위안한 쾌거를 거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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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우승 후 드류 브리스가 아들 베이런을 들어올리는 모습. 이 장면은 카트리나를 이겨낸 뉴올리언스의 상징적인 장면으로도 널리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슈퍼볼 우승이후에도 꾸준하게 강팀으로 두자리 승수를 올리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세인츠는 2012년 시즌을 앞두고 또다시 초대형 사건에 휘말린다.
7.2. 현상금 게이트(Bountygate)
2009년 세인츠가 슈퍼볼 우승을 차지할때 코칭스탭의 중심에는 공격 코디네이터 피트 카마이클, 수비 코디네이터로는 그렉 윌리엄스가 있었다. 헤드코치 션 페이튼이 공격팀 관리에 신경쓰면서 팀의 수비진 관리를 맡은 수비 코디네이터 그렉 윌리엄스는 2001~3년까지 버팔로 빌스의 헤드코치를 맡았으며, 2004년 이후로는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수비 코디네이터를 맡은 수비 전문 코치.
그런데 2011 시즌 플레이오프 디트로이트 라이온즈와의 경기 시작하기 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세인츠의 수비선수들이 일부러 거친 플레이를 한다는 것. 이를 의심한 타 구단들과 NFL측이 진상조사에 들어간 결과, '''세인츠 수비팀의 선수들이 일부러 상대에게 거칠게 수비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이 밝혀진 후 2009 시즌 NFC 컨퍼런스 결승전 당시 티비로 보는 사람들조차 과하게 힛을 당했다 싶었던 노장의 브렛 파브도 인터뷰를 하였는데 당시 바로 지난 시즌까지 바이킹스의 동료이자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대런 샤퍼마저 이상할 정도로 과격하게 나오자 도대체 뭐하는거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그 당시 게임은 뭔가 이상했었다고 하였다. 브렛 파브를 향한 태클 편집영상을 보면, 세인츠 선수들이 브렛 파브에게 late hit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들이댔다. 만약 2018년 환경이었다면 저중 상당분은 러핑 더 패서 페널티를 먹고 남을 수준이며 고의적인 late hit이면 NFL에서 벌금도 물어야할 정도로 비신사적이고 동업자정신을 내다버린 더티 플레이이다.
원래 NFL에서는 실적에 따른 보너스 지급이 금지되어있다. 꼭 스포츠가 아니어도 성과급이라는 제도가 원래 그렇지만 이 성과에 매달리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 그런데 세인츠의 수비 코디네이터 그렉 윌리엄스는 세인츠의 수비팀을 상대로 현상금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그것도 색이나 인터셉트같은 정상적인 기록에 보너스를 거는 정도도 모잘라서 수비수가 상대 에이스급 공격수에게 강한 태클을 날려서 공격수가 부상을 당해 실려나가면 얼마, 그 경기에 아예 못뛰게 되면 그 이상의 상금을 내건 것이다. NFL은 정규시즌이 16경기에 불과한만큼 한경기 한경기 주요 선수가 뛰느냐 못뛰느냐가 전력차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알기쉽게 다른 종목으로 설명하자면, 야구에서 투수코치가 상대방 강타자에게 현상금을 걸어서 자기팀 투수가 상대팀 강타자에게 빈볼을 던져서 타자가 부상을 당해 교체 아웃되면 '''빈볼 던진 투수에게 직접 상금을 주거나''', 축구에서 감독 지시로 리오넬 메시,네이마르,킬리안 음바페같은 상대 에이스에게 거친 태클을 해서 에이스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면 '''태클한 선수에게 상금을 주는 것'''. 이런 식으로 자기팀 수비수들을 사냥개처럼 이용해 상대팀 에이스들을 다치게하거나 쫓아낸 것.[44] 즉, 대놓고 에이스 킬러짓을 한 셈. '''프로스포츠의 동업자 정신따위 개나 줘버린 셈이다.'''
조사 결과 그렉 윌리엄스는 2004년 워싱턴 레드스킨스에서부터 '''상습적으로''' 이런 짓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고[45] , 2012년 세인츠 수비 코디네이터를 그만두고 세인트루이스 램스로 이적한 수비 코디네이터 그렉 윌리엄스는 무기한 자격정지, 이에 적극 가담한 세인츠의 수비팀 리더였던 미들라인배커 조나단 빌마[46] 는 2012년 1시즌 전체 출장정지, 디펜스 태클 앤서니 하그레이브 8경기, 라인배커 스캇 후지타 3경기 디펜스엔드 윌 스미스 4경기(사후 취소)[47] 그리고 이를 예방하지 못한 헤드코치 션 페이튼 역시 1년의 출장정지를 받게 되었다. 처벌은 선수와 코치 개인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런 사태가 벌어지도록 방관한 세인츠 구단에도 내려져, 팀 단장인 미키 루미스는 정규시즌의 첫 8경기를 치를 때까지 업무 정지 징계를 받았고[48] , 구단에도 50만 달러의 벌금이 매겨졌을 뿐만 아니라 세인츠는 2012년, 2013년 두 해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지명권을 박탈당하게 되었다.[49] 허나, 우리가 남이가는 NFL에서도 통하는 말이라서 그런 전력에도 NFL팀에서 코치능력으로 인정받던 그렉 윌리엄스는 2012년 스리슬쩍 자격정지가 풀려 세인트루이스 램스의 수비코치로 복귀했고, 2018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임시 헤드코치를 거쳐 2019년 현재 뉴욕 제츠의 수비코치로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7.3. 2012 시즌
현상금 스캔들로 헤드코치 션 페이튼을 잃어버린 세인츠는 어쩔수 없이 강제리빌딩에 가까운 시즌을 맞게 된다[50][51] . FA가 된 드류 브리스를 역대 최고금액인 5년 9천만 달러에 잡았지만 팀의 지도자인 션 페이튼을 잃고 수비진이 반토막나면서 초반 4연패를 하게 된다.
팀의 수비 에이스인 윌 스미스가 돌아오면서 5주차 샌디에이고 차저스 경기에서 승리해 1승 4패를 기록중이지만 초반 애틀랜타 팰컨스의 기세가 엄청나고 4연패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남은 경기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후반기 열심히 승수를 쌓아 시즌 막판 실낱같은 가능성을 남겼지만 17주차 뉴욕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52대17로 참패함으로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최종 성적은 7승 9패.[52] 드류 브리스가 패싱야드와 패싱터치다운에서 리그 1위인 5177야드에 43터치다운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상금 게이트로 수비진이 박살난게 치명적. 게임당 440.1야드를 허용했는데 NFL 역대 최악의 기록이었다. 당연히 시즌 종료 후 드래프트에서도 1라운드에서 세이프티 케니 바카로를 픽하는 등 수비보강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모양.
7.4. 2013 시즌
'''끝까지 가지못한 화려한 컴백.'''
드류 브리스와 찰떡궁합 콤비인 션 페이튼이 돌아오면서 공격진이 예전의 위용을 거의 되찾았고, 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해임된 수비 코디네이터 랍 라이언[53] 이 부임해 디펜스를 정비하면서 2000년대 후반의 막강 공격진-평균은 넘는 수비진 조합이 완성되었다. 2012년 현상금 게이트로 역대급 최악이라는 소릴 들은 수비진을 생각하면 칩스의 선전 만큼이나 놀라운 환골탈태. 그 덕에 8주차까지 6승 1패로 NFC 전체 2위의 승률을 구가하고 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전의 아쉬운 종료 4초전 역전패만 아니었다면 무패였다는 점이 아쉬운 점. 서부지구의 포티나이너스, 시혹스와 함께 강력한 NFC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후반기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면서 손쉽게 지구우승을 확정짓고 시애틀과 홈필드 어드밴티지를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캠 뉴튼을 필두로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한 지구내 라이벌 캐롤라이나 팬서스가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하면서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후반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캐롤라이나는 아오안급이었고 못해도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직행, 잘만하면 시애틀을 제치고 홈필드 어드밴티지를 따내면서 2010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부풀렸지만 점차 수비진의 뎁스 부족이 한계를 드러내고, 공격진의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캐롤라이나와 홈에서 벌어진 맞대결은 승리로 이끌었지만 시애틀과의 원정경기를 놓치면서 슈퍼볼 진출에 가장 유리한 고지가 될 홈필드 어드밴티지의 꿈을 접어야 했고, 2주일만에 벌어진 캐롤라이나와의 원정 리턴매치를 내주면서 지구 선두자리도 캐롤라이나에게 내주고 말았다.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시즌 막판 1승 3패의 부진으로 최소한 2번시드는 손쉽게 따낼 것으로 예상됐던 시즌 중반까지의 전개와는 달리 와일드카드로 밀려나면서 플레이오프를 불리한 원정경기로만 치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따뜻한 남부지방에 본거지를 가지고 있고 돔구장을 쓰는 팀 특성상 홈, 원정 기복이 어느정도 있을 수 밖에 없는데 2013년에는 매우 심해서 홈에서는 8승0패로 무적이었지만 원정경기에서는 3승5패로 승률 5할에도 못미치는 평범한 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약점을 노출하면서 원정경기 위주로 짜인 시즌 막판에 불안감을 가중시킨 상태였고 결국 그것이 현실이 되어 와일드카드로 밀려났다. 원정에서 세인츠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퍼포먼스에 플레이오프 첫 경기를 매우 추운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홈구장에서 해야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다. 그래서 플레이오프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필리팬들의 호전적인 분위기가 난무하던 적지에서 전반에 리드를 잡고 4쿼터 막판에 역전을 허용했으나 침착한 경기운영으로 경기종료와 동시에 역전 필드골을 성공시키면서 창단 이후 첫 플레이오프 원정경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 상대는 시즌 최강자인 시애틀 시호크스와의 원정경기라 산넘어 산. 결국 시애틀과의 디비전 플레이오프에서 시애틀에게 15-23으로 예상대로 패하면서 2013 시즌을 마감했다.
7.5. 2014 시즌
'''그래도 플옵은 갈.......까? 그런거 없다!!!'''
'''망했어요'''
시즌 초 FA 최대어 수비수였던 세이프티 재이러스 버드를 영입하면서 더 나은 수비를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웬걸 수비진은 2012년 수준으로 돌아가버렸다. 프런트라인과 후방 가릴 것 없이 2013년의 위용을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더 문제는 드류 브리스가 이끄는 공격진, 러닝백 대런 스프롤스, 리시버 랜스 무어등이 나가긴 했지만 신인으로 발빠른 브래딘 쿡스를 지명하여 더 강력한 롱볼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팀의 에이스 타이트엔드 지미 그래엄이 부상에 시달리면서 미드레인지 공격에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시즌 초 연패를 당하며 올해의 가장 실망스러운 팀 후보에 오를 뻔 했다.
그래도 워낙 지구가 널널해서 지구팀 상대로 1승만 무난히 적립하면 지구 1위가 무난한 상황으로 9주차까지 4승 4패로 지구 1위를 지켰다. 그러나 그 이후 3연패를 당하면서 애틀랜타 팰컨스에게 지구 선두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뉴올리언스의 선두자리를 뺏은 애틀랜타도 4승 7패의 한심한 성적에 머물러 있어, 예년 같으면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탈락할 성적인데도 두 팀이 지구 선두 자리를 놓고 다투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추수감사절 기간 중인 13주차에는 두 팀이 나란히 승리를 거뒀지만 누가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든 지구 우승팀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성적일 확률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어쩌면 슈퍼볼 시대가 시작된 이후 역사상 최악의 디비전, 최악의 지구우승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상태이다.
결국 16주차에서 애틀랜타 팰컨스에게 지면서 지구선두 다툼에서 나가 떨어지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한다. 최종 성적은 7승 9패.
7.6. 2015 시즌
'''망했어요 시즌 2'''
시즌 시작전부터 브리스의 No.1 타겟이었던 지미 그래엄을 시애틀 시호크스로 트레이드하면서 충격적으로 시작했다. 팬들의 반응은 가뜩이나 수비가 안되는 팀에서 이젠 공격도 말아먹을 셈이냐는 반응.
수비는 가히 리그 최악이라 할 만하다. 그나마 공격 쪽에서 드류 브리스가 분전하고 있기는 하나, 그 역시 노쇠화가 점점 눈에 보이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공격 역시 전성기 때의 화끈한 모습이라 보기는 어렵다. 14주차 MNF만을 남겨두고 있는 현재 야드수 기준으로는 리그 4위이지만, 득점 기준으로는 리그 11위에 그치고 있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거기에다 수비는 리그 최악. 야드 수 기준으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이 내주었으며, 실점은 리그에서 압도적 1위이다. [54] 대체적인 반응은 드류 브리스 없었으면 0승 16패를 먹었을지도 모르는 팀. [55] 게다가 큰 기대를 받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로부터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코너백 브랜든 브라우너는 제대로 먹튀 짓을 시전한 것도 모자라 SNS로 입을 털며 가뜩이나 안좋은 수비진의 분위기를 더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니... 결국 수비 코디네이터 랍 라이언은 욕을 한바가지 먹고 쫓겨났다. 브라우너도 당연히 방출. 결국 '''또''' 7승9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에서 드래프트 되지 못하고 연습스쿼드로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방출되어 여러 팀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실패해오던 윌리 스니드는 연습 스쿼드로 팀에 합류하여 69 캐치, 984야드 전진으로 주전 리시버가 되어 주었다. 역시 연습스쿼드 출신인 장신 리시버 브랜던 콜맨도 30캐치, 454야드를 전진해주었고 수비진에서도 드래프트되지 못했던 신인임에도 시즌 도중 트레이드된 아킴 힉스의 자리를 채워준 수비엔드 바비 리처드슨, 고등학교 때의 경기중 사고로 인해 경추 골절이 되어 선수생활 자체가 위태로웠다가 극복하고 지역 풋볼팀을 통해 입단하여 주전자리까지 차지한 코너백 델빈 브루, 대학때는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를 하다가 뜬금없이 미들라인배커로 변신한 스테폰 안쏘니, 2라운드에 지명되어 시즌 중반부터 주전 엣지-러셔로 활약한 하올리 키카하 등이 신인임에도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등 세대 교체가 이뤄지기 시작한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
이에 시즌 후 오랫동안 팀에 헌신해온 공격가드 쟈리 에반스와 리시버 말퀘스 콜스턴을 방출하였다.
7.7. 2016 시즌
'''망했어요 시즌 3'''
2016년 4월 9일 슈퍼볼 우승 당시의 주전 수비엔드였던 윌 스미스[56] 가 가벼운 차량 접촉사고 후 언쟁을 벌이다가 상대가 갑자기 총을 꺼내 발포하여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풋볼계 뿐 아니라 타종목 스타들까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아주 별볼일없는 시즌이다. 개막하자마자 3연패를 당하는 것부터 시작해서는, 이번 시즌 잘나간다 싶은 분위기인 팀을 만나면 반드시 패하고, 좀 못하는 듯한 분위기의 팀을 만나면 승리는 이따금씩 챙기면서 아주 어중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 친숙한 숫자인 7승 9패, 설마 또 7승 9패를?...
'''정말로 하고야 말았다.''' 세인츠는 3년 연속으로 7승 9패를 기록하며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 시즌 제대로 망해서 작년의 슈퍼볼 진출이 무색하게 6승밖에 못 거둔 캐롤라이나 팬서스에만 앞선 지구 3위. 쿼터백 드류 브리스는 커리어 5번째로 5,000 야드 이상 패싱[57] 을 기록하면서 리그 패싱 야드 선두, 패스 성공 횟수 선두(471회 성공[58] ), 패스 성공률 리그 2위(70.0%) 등 다양한 기록을 내면서 여전히 정상급 쿼터백임을 보여주었지만,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끄는 데는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괄목할 만한 시즌 성과라고는 16주차에 갈 길 바쁜 지구 라이벌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깜짝 승리를 거두어, 9년만의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꿈꾸고 있던 벅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 정도? 아직까지는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긴 하지만 브리스의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3년 연속 저조한 성적을 보였으니 뭔가 미래를 바라본 팀 재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7.8. 2017 시즌
팀의 주축 WR인 브랜딘 쿡스를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받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트레이드했다. 동시에 패츠의 CB 말콤 버틀러를 받기 위해 트레이드 협상도 벌였지만 결렬되었다.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한 RB 팀 하이타워와는 재계약하지 않았고, 대신 막 방출된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전설급 RB 아드리안 피터슨을 영입했다. 이제는 나이도 많은데다 이미 팀의 주축 RB 자리를 마크 잉그램이 맡고 있기 때문에 피터슨이 메인 러닝백으로 활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어쨌든 그의 가세로 세인츠의 러싱 게임이 보다 강력해질 것이라는 데엔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 외에 캐롤라이나 팬서스의 WR 테드 긴 주니어, 로스앤젤레스 차저스의 LB 맨타이 테오 등의 FA를 영입해서 선수진을 보강했다.
Slot Receiver 윌리 스니드가 시즌 직전에 약물로 인해 4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Week 1. 바이킹스에게 무참히 졌다.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디펜스는 최대 과제. 브리스는 여전하나 윌리 스니드의 공백이 크다. 에드리안 피더슨의 부진이 너무 크다. 더군다나 팀 캐미까지 깨트리는 행동을 골라서 한다.
Week 2.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게 또 졌다. 여전히 디펜스와 오펜스 시스템의 문제가 다가오면서 세인츠에게 큰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세인츠는 2011년 이후 9월에 전패를 기록했다)
Week 3. 캐롤라이나 팬서스를 무참히 두들기면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뭔가 오펜스 시스템이 맞아 떨어지고 1라운더 2라운더 마션 라티모어, 마르쿠스 윌리엄스가 좋은 활약을 보이고 캠뉴튼을 두들기면서 이긴다. 이 경기에서 디펜스 시스템이 뭔가 구축되어가는 모습이 보여진다.
Week.4. 마이애미 돌핀스와 런던경기를 치른다. 알빈 카마라가 이 경기에서 날아 오르고 브리스는 브리스이고... 디펜스는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셧아웃 경기를 만든다. 제이 커틀러 상대로 0득점이라는 치욕을 안겨준다.
Week 5. 직전에 에드리안 피더슨이 보상픽을 받고 애리조나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된다. 알빈 카마라와 마크 잉그램을 위주로 러닝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윌리 스니드가 복귀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풀 타임을 뛰지 못한다. 다만 팬서스에서 온 테드 긴이 와이드 스트레치 리시버 시스템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상대로 52점을 내는 맹폭격을 감행한다. 브리스가 1 턴오버가 있긴 하지만 디펜스가 픽 six 혹은 펌블 리커버리 터치다운을 보여주는 등 디펜스 시스템이 완성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DE 카메론 조던은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3승 2패였지만 향후 일정이 너무나 좋다. 로저스가 빠진 패커스. 리시버진 전멸한 베어스. 오펜스 시스템의 부재로 고전하고 있는 버캐이너스 그리고 이번 시즌 드래프트 상위픽을 가져가서 드래프트에서 쿼터백을 뽑아야 하는 제츠와 빌스 올해 플레이오프를 기대해 볼만한 대진이다. 가뜩이나 팔콘스가 부진하고 있고 팬서스도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 캠 뉴튼의 캐롤라이나 팬서스를 상대로 진땀승을 거뒀으나 디비저널 라운드에서 미네소타를 상대로 맞아 미니애폴리스의 비극을 당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 더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세인츠 팬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7.9. 2018 시즌
구단주 톰 벤슨이 2018년 3월 15일에 사망했다. 세번째 부인이자 현 부인인 게일 벤슨이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했다. 톰 벤슨 사후 팀의 소유권을 놓고 상속권을 가진 딸, 손자들과 분쟁이 일어날 뻔 했으나 결국 뉴올리언스 세인츠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만 게일 벤슨이 상속받고 그 외의 다른 재산은 딸, 손자들이 받는 걸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고 한다. 구단주가 바뀌면서 팀의 운영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재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캐롤라이나 팬서스에 이어 테네시 타이탄스, 뉴올리언스 세인츠도 매각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팀 오너쉽의 사정과 무관하게 드류 브리스로 대권도전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다 이긴 게임을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날려먹은 팀은 시즌 초 마크 잉그램의 4경기 출장정지를 대체할 선수로 패트리어츠에서 방출된 마이클 길리슬리를 영입해 알빈 카마라와 탠덤을 세울 예정이다. 수비에서는 세이프티 케니 바카로의 이적을 대체할 세컨더리 지명대신 텍사스-샌안토니오 대학의 수비엔드 마커스 데이븐포트를 지명하는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팬들을 놀라게 했는데, 기존의 수비진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약점이던 패스러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도전을 시사했다.
그리고 공격, 수비 모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막전에서 주전 쿼터백인 윈스턴이 징계로 결장한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게 패배하면서 의문을 자아내게 했지만, 그 이후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고''' 특히나 9주차에 당시 무패 행진 중이던 LA 램스를 홈으로 불려들여 전반전에만 35점을 퍼붓고 후반전 램스의 맹추격을 뿌리치면서 승리... '''2018 시즌 NFC의 지배자는 세인츠'''라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 이후로도 계속 연승을 달리고 있다가 13주차에 아마리 쿠퍼 영입 이후 한참 기세를 타고 있었던 댈러스 카우보이스한테 덜미를 잡히며 연승이 끊긴 이후 공격력이 주춤해졌고, 특히나 15주차 MNF 캐롤라이나 원정 경기에서는 눈이 썩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12:9로 간신히 승리를 거뒀지만, 16주차에 갈길이 바쁜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서 공격력이 살아나면서 31:28로 승리를 거두고 NFC 플레이오프 1번 시드를 확정지었다.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어 NFC 2번시드인 LA 램스와 슈퍼돔에서 맞붙게 되었다. '''그런데......'''
20:20 동점인 상황에서, 4쿼터에 1분 45초를 남겨두고 램스 CB 니켈 로비-콜먼이 세인츠의 WR 토미리 루이스에게 누가봐도 Pass interference 및 helmet to helmet 반칙을 했는데 '''플래그는 단 1장도 날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세인츠 헤드코치 션 페이튼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만약에 심판이 반칙을 불었으면 세인츠의 퍼스트 다운이 되어 타임아웃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던 램스는 세인츠가 필드골을 집어넣기 전까지 시간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59] 결국 필드골을 넣어 일단 23:20으로 앞서갔으나, 램스가 남은 시간동안 필드골을 성공해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연장전 코인 토스로 선공을 잡았으나, 하필 중간 지점에서 인터셉션을 당했고 램스가 바로 장거리 필드골을 성공시키며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단 한번의 치명적인 오심으로 인해 슈퍼볼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당연히 헤드코치 션 페이튼과 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여파로 PI에 대해서도 챌린지가 가능하게 되도록 룰이 개정되었다.
7.10. 2019 시즌
Week 1
vs 휴스턴 텍산스 30:28 승, 시즌 성적 1-0
Week 2
vs @ 로스앤젤레스 램스 9:27 패, 시즌 성적 1-1
드류 브리스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아웃.
Week 3
vs @ 시애틀 시호크스 33:27 승, 시즌 성적 2-1
이 경기부터 테디 브리지워터가 스타팅 쿼터백으로 나선다. "살아있는 풋볼" 테이썸 힐과의 와일드캣플레이 등도 더 많아질 예정.
Week 4
vs 달라스 카우보이스 12:10 승, 시즌 성적 3-1
Week 5
vs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31:24 승, 시즌 성적 4-1
Week 6
vs @ 잭슨빌 재규어스 13:6 승, 시즌 성적 5-1
Week 7
vs @ 시카고 베어스 36:25 승, 시즌 성적 6-1
Week 8
vs 애리조나 카디널스 31:9 승, 시즌 성적 7-1
그 분의 복귀 경기.
Week 9
BYE WEEK
Week 10
vs 애틀랜타 팰컨스 9:26 패, 시즌 성적 7-2
시즌 최약체중 하나인 팰컨스와의 라이벌리에서 패배. 역시 라이벌 대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Week 11
vs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34:17 승, 시즌 성적 8-2
Week 12
vs @ 캐롤라이나 팬서스 34:31 승, 시즌 성적 9-2
최종 성적 13-3 으로 3번 시드를 획득하며 BYE WEEK획득엔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미네소타와의 와일드카드전에서 복수를 다짐했으나....
연장 접전 끝에 결국 26-20으로 패배. 필드골 미스와 무리하게 롱패스 시도하다 인터셉션당해 터치다운을 내준 브리스의 부진이 아쉬웠다. 결국 이번에도 허망하게 시즌이 끝이 났다.
이와 별개로 션 페이튼 감독이 2020년 3월 19일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와 접촉했던 트레이너와 더불어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7.11. 2020 시즌
'''사실상 마지막 대권 도전'''[60]
Week 1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23 : 34 W : 지구 라이벌전이자 두 전설의 만남. 앨빈 카마라만 막아라! 했다가 오히려 새된 버커니어스가 브리스에게 우주 관광을 당하며 발등을 찍었다. 결국 두 전설의 맞대결은 34대23으로 끝났다.
Week 2 라스베이거스 레이더스 24 : 34 L: 얼리전트 스타디움개막전. 먼데이 나잇 풋볼로 진행됐고, 여기서 브리스가 나이 탓인지 뭔가 어버버버 하는 플레이를 남발하며 션 페이튼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반대로 데릭 카는 존 그루덴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홈에서 깔끔한 승리를 챙겼다.
Week 3 그린베이 패커스 37 : 30 L : 선데이 나잇 풋볼로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애런 로저스라는 전설을 향해 달리는 사나이와의 맞대결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NBC에서 야심차게 계획했다고는 하는데... 경기는 백투백 삽질로 자멸한 세인츠의 패배.
Wekk 4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35 : 29 W : NFC 북부지구의 호구를 만나러 포드 필드로 향했다. 역시나 맷 패트리샤의 전술 착오를 너무나 잘 읽었던 것일까? 경기 내내 디트로이트를 제압하며 경기를 유리하게 운영해 나갔다.
Week 5 로스앤젤레스 차저스 27 : 30 W : 먼데이 나잇 풋볼로 진행됐는데, 노련한 브리스와 대학시절 리그를 씹어먹었던 허버트의 신구 맞대결로 주목받았다. 경기는 예상 외로 접전이었고, 허버트의 2% 부족한 부분(공격라인 통솔)을 브리스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에 차이가 컸다. 결국 허버트에게 참교육을 시켜주며 승리를 챙겼다.
Week 6 바이위크
Week 7 캐롤라이나 팬서스 24 : 27 W : 작년까지 세인츠에서 뛰었던 테디 브리지워터가 슈퍼돔을 찾아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라고 했던가.. 두 쿼터백은 서로를 봐주지 않을 듯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고, 결국 3점차의 근소한 승부로 갈려지게 되었다. 27대24로 세인츠 승리.
Week 8 시카고 베어스 26 : 23 W : 난형난제급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닉 폴스와 미첼 트루비스키. 이 둘이 한 팀에 있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승부도 바보들의 대행진을 보는 듯 엎치락뒤치락 했다. 결국 연장전에서 한끗 차이로 판가름이 났다. 26대23으로 승리.
Week 9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38 : 3 W : 개막전 라이벌이 8주 후에 또 만났다. 이번 경기는 패싱 터치다운 기록에서 앞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대로 미 전역에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기에 충분한 매치업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톰 브래디가 어버버버 하는 플레이로 말 그대로 브리스에게 초전박살이 났다. 38대3. 버커니어스는 필드골 3점 득점으로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다. 선데이 나잇 풋볼 진행자들[61] 은 김이 잔뜩 빠졌는지, 마지막에는 영혼이 없는 듯한 멘트로 경기종료 콜을 알렸다.
Week 10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13 : 27 W : 지미 가로폴로와 조지 키틀이라는 공격의 핵심이 빠진 나이너스는 뭐하나 제대로 구사되지 않는 상황. 백업 쿼터백인 닉 멀린스가 브리스와 맞섰지만, 깜냥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변수가 따로 있었는데, 브리스가 나이너스 수비진에 복합 태클을 얻어맞고 경기에서 빠졌는데, 갈비뼈가 11개나 손상된 큰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결국 제이미스 윈스턴과 테이썸 힐이 번갈아가며 출전해서 승리를 매조지었다.
Week 11 애틀랜타 팰컨스 9 : 24 W : 메르세데스-벤츠 더비 1. 경기력은 낡디 낡은 슈퍼돔을 쓰는 세인츠의 압승. 맷 라이언은 그대로 얼어붙고 울며 집으로 갔다 카더라. 24대9로 승리.
Week 12 덴버 브롱코스 31 : 2 W : 세인츠 앞에선 해발 1,600m은 사치인 모양. 게다가 당시 덴버의 낮최고 기온은 영상 2도였다! 오랫만에 경기장 밖으로 나와서 신났는지 열심히 필드를 누볐다. 테이썸 힐은 브리스의 공백을 전혀 느껴지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31대3으로 압승. 당시 덴버의 쿼터백 전원이 코로나 때문에 결장한지라 WR이 쿼터백 역할을 수행한, 세인츠로서는 이길 수밖에 없었던 경기였다.
Week 13 애틀랜타 팰컨스 21 : 16 W : 2주만에 성사된 메르세데스-벤츠 더비 2. 이쯤되면 애틀랜타와 뉴올리언스는 라이벌 관계라 하기엔 정말 부끄럽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브리스의 공백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느껴진 힐의 활약에 따라 브리스는 마음 놓고 푹 쉬어도 될듯 하다.
Week 14 필라델피아 이글스 21 : 24 L : 경기 시작 전, 필라델피아의 선발 쿼터백이 카슨 웬츠에서 제일런 허츠로 변경한다는 소식에 "당연히 뉴올리언스가 이기겠네 낄낄." 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으로 시작.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필라델피아가 이런 예상을 한 전문가들의 뒷통수에 100톤짜리 망치 6연타를 갈겼다. 션 페이튼 감독도 허츠의 무쌍함에 당황했다고. 결국 세인츠의 9연승을 저지한 성과를 올린 필라델피아의 승리. 24대21.
Week 15 캔자스시티 치프스 32 : 29 L : 포스트시즌을 진즉에 확정지은 두 팀과의 경기. 이 때 드류 브리스가 돌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력이 예전같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
브리스는 건재했지만, 특유의 롱패스가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설상가상으로 세인츠의 패싱 디펜스는 중하위권이었기 때문에, 방향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패스를 난사하는 마홈스를 막기엔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경기는 난타전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홈스 뒤에는 키커 해리슨 버커가 있었다. 버커는 필드골 시도 족족 성공시키며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갔고, 결국엔 32대29로 3점차로 승리했다.
Week 16 미네소타 바이킹스 33 : 52 W : 포스트시즌만 되면 끈질기게 세인츠의 앞을 막아섰던 미네소타. 정규시즌 맞대결 기록을 보면 정확히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만큼 세인츠와 바이킹스가 정규시즌에서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세인츠는 지난 포스트시즌만 되면 발목을 잡고 늘어졌던 바이킹스의 방해를 철저히 떨궈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임하게 됐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드류 브리스는 통산 80,000야드 패싱기록을 작성했고, 앨빈 카마라는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며 6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는데, 이중 5개의 러싱 터치다운[62] 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바이킹스를 52대33으로 처참하게 박살을 내버리며[63] 자력으로 NFC 남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4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대업을 달성한 것은 덤.
Week 17 캐롤라이나 팬서스 33 : 7 W :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캐롤라이나를 상대로 본격적인 담금질에 들어가는 세인츠. 결국 무난히 33대 7로 대승을 거두며 2번시드를 확보했다. 그리고 드류 브리스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팬들은 올해는 제발 우승하자는 분위기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시카고 베어스 9 : 21 W : 전문가들의 예상도 압도적으로 세인츠의 우세를 점했다. 결과 역시 전문가들의 예상이 한 치의 오차없이 적중했다. 미첼 트루비스키의 자멸도 컸지만, 카마라가 돌아온 세인츠의 공격력은 한층 배가된 상황. 결국 24대9로 베어스를 박살을 내고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올 시즌만 3번째. 명경기들이 많이 쏟아진 이번시즌 와일드카드 경기들 중에서 가장 무난하고 예측대로 흘러간 경기였다.
디비저널 라운드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30 : 20 L : 브리스와 브래디가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만나는 경기였고, 그만큼 기대가 큰 상황이었다. 직전 정규시즌 두 경기에서 세인츠가 완벽하게 압살했기에 이번에도 상당수의 전문가들과 팬들은 세인츠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브리스와 세인츠에게 두 번째 우승은 허락되지 않았다. 직전 맞대결에서 생애 최악의 활약을 펼친 톰 브래디는 이번 경기에 2개의 패싱 터치다운을 던지며 무난한 활약을 선보인 반면, 이번엔 브리스가 개인 플레이오프 최다 기록인 3개의 인터셉션을 던지며 자멸하고 만다. 브리스 외에도 알빈 카마라가 이번에도 105야드를 생성하며 [64] 분전했으나 터치다운은 없었고, 마이클 토마스는 아예 4번 타겟팅 되는동안 0개의 패스 리셉션 성공만을 남기며 경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 결과 결국 시즌 3번째 맞대결이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세인츠는 승리를 내주고 말았고, 브리스의 슈퍼돔에서의 마지막 경기도[65] 허무하고도 치욕스럽게 끝나고 말았다.[66] 이번 시즌을 처절하게 마무리한것도 안타깝지만 더 문제인것은 다음 시즌. 우승을 위해 한계까지 캡을 끌어 쓴 탓에 브리스가 은퇴한다고 해도 팀 기둥뿌리를 다 팔아버려야 할 상황이다.
7.12. 2021 시즌
2020시즌이 끝나기도 전부터 피바람이 예고되어 있다. 일단 드류 브리스의 은퇴가 확실시 되는 가운데 현 로스터 기준으로 따졌을 때 2021시즌 샐러리캡[67] 은 기준에서 무려 '''$98M'''이 오버된 상황이다. 이 상황은 한둘이 아니라 팀 기둥뿌리를 다 뽑아할 지경이다. 세인츠 팬들은 브래디에게 판 깔아주겠다고 생겼다고 낙담하는 중.(...)
일단 2021년 2월 6일 브리스가 계약을 조정해 2021시즌 최저 연봉을 받은 걸로 조정해 $24M을 확보했다.
8. 홈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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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구결번
10. 이모저모
- 팀의 색상인 빛바랜 금색 (Old gold), 검은색 (Black)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유니폼 + 팀의 마크인 백합무늬가 그려진 헬멧의 디자인을 창단 이후부터 줄곧 사용하고 있다. 자질구레한 마이너 체인지를 제외하면 창단 이후 전혀 팀의 색상과 유니폼의 형태에 변화가 없다. 약간의 마이너 체인지 만으로 창단 이후 같은 유니폼으로 쭉 버틴 것 치고는 독특한 색과 분위기로 '가장 멋진 져지 순위'에서 9위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 기본적으로는 홈은 검은 상의에 금색 바지. 원정은 흰색 상의에 금색 바지를 원칙으로 시기에 따라 유니폼 넘버만 금색이나 검은 색으로 바뀌기는 한다. 수채화로 알아보는 세인츠 유니폼의 변화. 젊은 팬들을 중심으로 헬멧을 검은 색으로 바꾸거나 하는 등의 변화를 주어보자는 SNS 내의 모임도 있을 정도지만 아직은 소수 의견인듯.
- 금색 팬츠 외의 다른 색의 팬츠로 바꿔본 적은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성적이 아주 바닥을 치다보니 그렇게 평이 좋지는 않았다.
- 팀 창단할 당시에는 팀 상징 컬러에 대한 최초 기안은 최대 투자자였던 John Mecom의 회사 상징 색이었던 Dark Blue에 Gold를 하려다가 샌디에이고 차저스와 같은 색이라는 이유로 각하당했다고.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검은색과 금색의 조합을 제출했는데 이는 또 마침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같은 색이었지만 피츠버그의 금색의 경우 조금 더 노란색에 가까운 금색이었던 덕분에 빛이 바랜 Old Gold로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 팀의 마스코트는 세인트경 (Sir Saint)과 검보(Gumbo the do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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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단 당시 공식 마스코트는 세인트경 하나 뿐이었다. 등번호는 1번. 그런데 문제는 흑인인구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 지방에 전형적인 백인에 매부리코, 엉덩이턱을 가진 마스코트를 세웠으니 당연히 인기가 없을 수 밖에. 게다가 보기에 따라서는 엉덩이가 아니라 고환턱으로 보이기도 해서(...) 항상 최악의 마스코트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취급이 안좋은지 2009 시즌 당시 신인이었던 키커 가렛 하트리가 필드골을 계속 실패하자 화가 난 코치 션 페이튼이 골대 뒤 관중석에 걸린 커다란 세인트경의 그림을 가리키며 '저 망할 마스코트의 턱에 차 넣으라고!!'하고 소리를 지른 장면이 전국으로 중계된 바 있다.
- 검보(Gumbo the dog)은 세인트 버나드종의 개를 마스코트화한 것으로 이름의 기원은 당연히 검보. 등번호는 00번. 개에 먹거리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원래는 검보는 공식 마스코트가 아니라 팀 창단 기념으로 뉴올리언스 식당 협회에서 한시적으로 기증했던 것이었기 때문.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공식 마스코트화 되었다. 팀이 승리하면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기도 하다.
- 'Who Dat?'이라는 응원구호가 유명하다. 구글에 Who Dat을 검색해보면 세인츠와 관련된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와 그림을 볼 수 있을 정도. "Who is That?"을 남부 사투리로 한 것으로 '누가 감히?', '쟤네 뉴규?' 이런 뜻으로 해석하면 될 듯. 단어 자체는 1920~30년대 재즈밴드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부 출신 병사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응원 구호로 쓰이기 시작한건 의견이 분분한데 1960년대 Southern 대학교에서 응원 챈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의외로 세인츠 프랜차이즈에 쓰인 것은 그것보다 훨씬 뒤인 1983년의 일로 뉴올리언스 출신의 R&B 가수 아론 네빌이 팀의 공식 응원가이기도 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녹음하면서 당시의 세인츠 선수들을 피쳐링에 참여시켜 "Who dat say dey gonna beat dem Saints" 라고 코러스를 넣게 한 노래가 지역에서 대히트를 기록, 공식적인 응원 챈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 'Who Dat'이 사용된 티셔츠 등의 물건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2010년 있었다. 지역에서 Who Dat이 인쇄된 티셔츠 등을 판매하던 회사는 아예 'Who Dat 주식회사'를 설립하며 NFL의 상표 독점권 소유 주장에 맞섰고 결국 상원의원, 주지사 등까지 나서서 일파만파 일이 커졌지만 결국은 공동소유권이 인정되면서 서로의 고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위키피디아에 자세한 상황이 잘 정리되어 있다.
- 세인츠의 열혈팬들을 'Who Dat Nation'으로 부른다. 지금은 가장 큰 뉴올리언스 세인츠 팬클럽의 이름이기도 하고 뉴올리언스 지역지에서 발송하는 뉴스레터의 이름으로도 쓰일 정도로 일반화된 단어이다. 2006년 댈러스 카우보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세인츠의 팬들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자 당시 라디오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바비 히버트(앞서 짐 모라 시절에 가장 오래 해먹었던 쿼터백 본인 맞다)가 "Man, there's a whole Who Dat Nation out there" (이봐, 밖이 온통 Who Dat Nation이야) 라고 한데서 기원했다고.
- 만약 세인츠 팬들의 글에서 Drew Dat 이라는 단어가 보인다면 이는 당연히 그 분을 의미한다.
- 세인츠에 관련된 SNS를 보다보면 'Geaux Saints'라는 기괴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아무리봐도 프랑스어의 어미인데 정작 프랑스어 사전에는 실려있지가 않다(...) 이는 Cajun French라고 하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일종의 사투리로 그냥 'Go Saints'로 이해하면 된다. 발음도 그대로 'Go Saints'로 발음한다.
- 팀의 공식 치어리딩 팀 이름이 '센세이션즈'이다. 알파벳 철자로는 'Saintsations'로 일종의 언어유희. 2014년 7월, 14년간의 심각한 신장질환을 이겨내고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된 두 아이의 엄마인 40대 치어리더 크리스티 루이스(Kriste Lewis)가 NFL 치어리딩 팀의 역사상 두번째로 40대 치어리더가 되며 화제가 되었다. [70]
- 팀의 창단 역사상 첫 플레이를 터치다운으로 장식한 유이한 프랜차이즈이다. 로스앤젤레스 램스와의 창단 첫 게임에서 94야드 킥오프를 존 길리엄이 리턴 터치다운으로 연결한 것[71] .
- 앞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 프랜차이즈의 최대의 라이벌은 역시 애틀랜타 팰컨스. 실제로 팰컨스의 역사를 비교해서 살펴봐도 탄생 - 같은 지구 - 바닥의 시기 - 반짝의 시기 - 지구 재편으로 다시 같은 지구 등등 사이클이 다소 겹치기까지 한다. 성적도 2019년 10월 현재 52승 48패로 근소하게 팰컨스가 앞서는 등 그야말로 최고의 라이벌. 언론에서도 'Dixie Championship'이라고 부르거나 최근에는 'Southern Showdown'이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 세인츠 vs 팰컨스의 경기라도 있다하면 원정 팀의 홈 경기장 앞에서 상대 팀의 홈 경기장 앞까지 운행하는 특별 버스가 무료로 팬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혹시라도 팀의 스타플레이어가 팰컨스로 이적이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배반자에 역적 취급을 받게 된다[72][73]
- 세인츠-팰컨스 라이벌리가 위키피디어에 장인정신 급으로 정리될 정도로 뿌리깊은 라이벌리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애틀랜타 출신이나 조지아 주 출신의 드래프트 상위 지명자들에게는 인터뷰 중에 '정말 세인츠에서 뛰어도 괜찮냐?' 라는 질문이 꼭 나온다. 지역 언론 뿐이 아니라 심지어 세인츠 공식 홈에서 한 인터뷰에서도 저 질문은 거의 반드시 나올 정도. 팀 최초의 1라운드 전체 1위 지명자였던 러닝백 조지 로져스의 경우만 해도 조지아주 출신이었는데 신인으로는 대단한 러닝기록으로 팀에 공헌했지만 그다지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을 보이지 않았던 점이 더 피해의식을 갖게 만든 듯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절대 농담으로 자신의 응원팀의 라이벌이라고 플레이를 태만하게 했다가는 당장 밥줄이 날아가는게 이 동네라서... 당장 앞서의 '돔 패트롤'의 라인배커이자 팀의 레전드인 팻 스윌링만 해도 애틀랜타 출신이다. 조지아 주 출신인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인 수비 태클 쉘든 랜킨스가 드래프트 후 첫 공식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게 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
- 1970년 11월 8일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전에서 키커 톰 뎀시는 63야드 끝내기 필드골을 성공, 이후 무려 43년간, 2013년 덴버 브롱코스의 맷 프레이터에 의해 깨질 때까지 최장 필드골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발가락이 없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선수로 역경을 딛고 결함을 극복하여 성공한 사례로 몇몇 자기개발서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 2019년 10월 현재까지도 NFL 최다 경기 출장에 빛나는 'The Great Dane' 모르텐 안데르센(Morten Andersen)이 선수생활을 시작하기도 하였고 가장 오래한 프랜차이즈도 세인츠.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으로 유소년 축구선수였던 앤더슨은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미식축구 키커로 전향하여 1982년부터 세인츠에 13년간 머물며 6번의 프로볼에 뽑히는 등 세인츠의 최다 득점 기록을 현재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이후 세인츠 외에도 4팀에서 47세까지 주전 키커로 활약하며 382경기를 출장, 현재까지도 NFL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74] . 커리어 최다 득점 (2,544점) 역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위에도 언급된 애덤 비나티에리가 제쳤다.
- 이 팀의 가장 유명한 팬이라면 브래드 피트를 들 수 있다. 1994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찍으며 뉴올리언스와 인연을 맺었던 그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에 저렴한 주택을 공급해주는 'Make It Right' 재단의 설립을 통해 대규모의 사회사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본인이 사는 집도 뉴올리언스에 지어 버렸다. 이후 줄곧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응원하는 듯. 드류 브리스의 팬서포터 모임에도 출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2010년 슈퍼볼 당시에는 부인인 안젤리나 졸리와의 불화설이 거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는데 보란 듯이 아들 매덕스와 함께 VIP석에서 찐하게 애정행각을 펼쳐주셔서 호사가들을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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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에도 유명한 팬으로는 힐러리 스왱크, 해리 코닉 쥬니어 등이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슈퍼볼 광고에서 응원영상을 찍은 바 있지만 팬들의 반응은...
[1] 프랑스의 개척지에서 시작된 연고지 루이지애나와 뉴올리언스의 역사를 반영하듯, 팀의 엠블럼은 구 프랑스 왕실의 상징인 백합꽃이다.[2] LSU 타이거스의 홈 구장[3] 뉴욕 자이언츠,뉴욕 제츠의 홈 구장이지만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원래 홈경기장인 루이지애나 슈퍼돔 일부가 파손이 되어 임시 홈경기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시즌 성적은 3승 13패로 시즌을 마감했다.[4] 1979년까지 NBA 뉴올리언스 재즈와 공용[5] 뉴올리언스 세인츠 구단주 겸 NBA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구단주였던 톰 벤슨이 2018년 3월 15일에 사망한 후 부인인 게일 벤슨이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6] 엄청나게 감동적인 스토리를 써내리며 우승했지만, 그 이면엔 현상금 게이트라는 추악한 진실이 있었다.[7] 경기 당시 댐시는 오른쪽 발가락 전체와 오른손 엄지가 없어서 앞 코가 뭉툭한 특제 슈즈를 신었으며, 이 기록은 2013년 덴버 브롱코스 키커 맷 프레이터가 테네시 타이탄스전에서 64야드를 차내 기록을 갱신했다.[8] 페이튼 매닝과 일라이 매닝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다. 다만 출신학교는 셋째 아들 일라이와 같은 미시시피 대학교(올 미스 레벨스)다.[9] 당시는 한 시즌 경기가 14경기였으므로 경기당 거의 네번에 가까운 쌕을 당했다는 얘기다. 여담으로 당시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전설적인 수비라인인 'Fearsome Foursome'의 리더였던 잭 영블러드의 경우 너무나도 약한 공격라인에 신음하던 아치 매닝을 불쌍히 여겨 다른 쿼터백에 비해 그렇게 세게 태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치 매닝도 그것을 눈치채고 둘 사이에는 포지션과 팀을 넘은 우정이 싹텄다고. 결국 아치 매닝의 명예의 전당 기념 스피치도 잭 영블러드가 했는데 '내(아치 매닝)가 없었으면 (내가 그렇게 쌕을 많이 당해주지 않았다면), 너(잭 영블러드)는 스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고(...)... 추가로 데뷔시즌인 1971시즌 40개, 이듬해인 1972시즌 43개로 쌕허용 1위를 3번 했다...[10] 이전 1979년 드래프트에서는 NFL 역사에 남는 뻘드래프트를 했는데 바로 1라운드 11번 픽으로 키커 겸 펀터인 러셀 엑슬레벤 Russell Erxleben을 지명한 것. 1966년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1라운드에서 키커인 찰리 고고락을 지명한 바 있어 최초의 1라운드 키커지명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드래프트였기는 했던 듯. 여론의 비난과 과도한 기대가 들끓자 엑슬레벤은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1980년 시즌의 개막전에서 4쿼터 동점 필드골을 실축하는 등 키커로서 실격의 모습을 보이게 되고 이후 시즌 중에 펀터로 전업하게 된다. 이 드래프트는 지금도 NFL 역사상 가장 최악의 1라운드 픽에서 순위에 들어가 있을 정도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엑슬레벤은 이후로 1983년 팀을 떠나 은퇴를 했다가 1987년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에서 1년간 잠깐 복귀했다가 다시 은퇴하는 등 굴곡진 선수생활을 하고 풋볼계를 떠났...지만 이후 사기혐의로 4번이나 법정에 서는 등 인생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케이스(...) 2016년 현재도 사기 혐의로 7년형을 받고 복역중이다.[11] 지금에야 쿼터백하면 떠오르는 레전드인 역전의 대명사지만, 1980년 당시 2년차 백업이었던 조 몬태나에게 NFL 첫 '''역전'''승의 기쁨을 누리게 해 준 팀 역시 세인츠이다. 몬태나는 주전 쿼터백이었던 스티브 디버그를 대신하여 선발로 출장한 두번째 경기인 14주차 세인츠와의 경기에서 전반에만 35:7로 지고 있다가 3,4쿼터에 내리 28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후 결국 팀의 연장전 승리를 이끌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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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탈을 쓰고 경기장에 나온 한화 이글스 팬들과 비슷한 풍경이다.[13] 대학 풋볼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14] 단 네 시즌만을 세인츠에서 뛰었음에도 이후 듀스 맥켈리스터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팀의 러싱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루키 시즌에는 1674야드를 달려 올해의 신인 상과 프로볼에 뽑히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줄곧 세인츠를 떠나고 싶어해 결국 신인 계약이 끝나자마자 워싱턴 레드스킨스로 이적하여 1987년 슈퍼볼 XXII 우승에 공헌했다. 참고로 루키시즌의 1674야드는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레전드 에릭 디커슨에 이은 2위 기록.[15] 세인츠에서도 주전급 풀백/러닝백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 스카우트와 라디오 해설자로서도 팀에 공헌, 이후 2016년 비극적인 윌 스미스 사건이 일어나 급작스럽게 세인츠 명예의 전당에 등록될 때 같이 입성하게 되었다.[16] 참고로 이들 중 한명인 샘 밀스는 최단신 라인배커로 유명한데 미국식으로는 5피트 9인치, 한국식 미터법으로는 175cm밖에 안된다.[17] Sam Mills. 전형적인 필드 사령관으로 175cm의 다소 작은 체격에도 넓은 시야와 압도적인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미들라인배커. 세인츠에서는 총 4회 프로볼에 선정되었다. 1994년 캐롤라이나 팬서스가 창단되었을때 자유계약으로 이적, 젊은 팀의 리더로 활약하며 1996년에는 37세의 나이로 프로볼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5년 암으로 별세. 이후 캐롤라이나 팬서스는 팀 최초로 그의 번호인 5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18] Pat Swilling 압도적인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전형적인 패스러셔로 세인츠에서는 총 4회 프로볼에 선정되었다. 여담으로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많이 승 없이 패한 선수이기도 하다(...) 플레이오프 통산 0승 6패[19] Rickey Jackson 1981년부터 세인츠에서 뛰어 이미 프로볼에 돔 패트롤 결성 이전에도 선정된 바 있는 스타 선수였다. 세인츠에서는 총 6회 프로볼에 선정되었으며 패스러쉬, 런 스톱, 패스 커버리지까지 그야말로 만능형 아웃사이드 라인배커의 전형. 1989년에는 시즌 직전 오토바이 사고로 턱뼈가 분쇄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초반 두 게임 결장 후 턱에 와이어를 고정하고 특수헬멧을 찬 채로 경기에 출장했다. 이 특수헬멧은 이후 리키 잭슨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세인츠 팀으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2010년)[20] Vaughan Johnson 샘 밀스가 스피드에 지능형이라면 본 존슨은 전형적인 파워형 미들라인배커. 세인츠에서는 총 4회 프로볼에 선정되었다.[21] 이 시기의 주전 쿼터백만 해도 데이브 윌슨 - 바비 히버트 - 빌 월쉬 - 다시 바비 히버트 - 웨이드 윌슨으로 해마다 바뀌었다. 그 이후 1994년에야 로스앤젤레스 램스로부터 그럭저럭 괜찮은 쿼터백인 짐 애버렛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그의 나이 33세...그리고 돔 패트롤은 해체되는 중이었다. 다시 그 이후 후임감독인 마이크 딧카 시대에서도 히스 슐러 - 빌리 조 톨리버로 이어지며 쿼터백 잔혹사를 계속하게 된다. 이 시기 '''그나마''' 가장 오래 해먹은 쿼터백은 바비 히버트(Bobby Hebert)로, 그럭저럭의 게임 매니져 타입 쿼터백이었던 탓에 본의 아니게 자주 까였던 안습의 존재(...) 하지만 이 히버트는 정작 은퇴 후에야 다른 곳에서 세인츠 프랜차이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공헌을 하게 되는데...[22] 팻 스윌링의 빈자리는 1990년 1순위로 입단한 르날도 턴불이 프로볼에 선발될 정도의 활약을 하며 잘 메꿔 주었지만 그는 곧 부상으로 인해 사라지고 만다.[23] 이 팻 스윌링을 트레이드하면서 얻은 1라운드 8순위 드래프트 픽으로 뽑은 것이 공격 태클 '내스티' 윌리 로프Willie Roaf 다. NFL 모든 팀들의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힐 정도의 역대급 태클이었던 그는 세인츠의 소속으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단 두명 중 두번째의 선수이다. (2012년 입성) NFL에서 선정한 All 90년대 팀, All 2000년대 팀에 모두 선발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24] 당시 이 결정은 콜츠 팬들에게서는 엄청나게 야유를 받았지만 결과는 신의 한수. 에드제린 제임스는 콜츠의 모든 러싱 기록을 다 갈아치우는 한편 , 12,000 야드 전진을 역대 최소인 95게임 만에 가장 어린 나이(27세 193일)로 경신하는 등 그야말로 엘리트 러닝백의 커리어를 보냈다.[25] 이는 아직까지도 역대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26] 여담으로 전술한 1979년의 1라운드 키커 드래프트로 흑역사를 썼던 러셀 엑슬레벤 역시 텍사스 롱혼스 출신이다. 아무래도 세인츠와 텍사스 대학교 사이에는 마라도 끼어 있는 듯 하다(...)[27] 리키 윌리엄스는 나름 3시즌 세인츠에 있는 동안 2번이나 1000야드 이상을 달리는 등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2001년도에 이후 세인츠의 통산 러싱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는 듀스 맥켈리스터가 입단하면서 마이애미 돌핀스로 트레이드되게 된다. 마이애미에서는 이적 첫해 1856야드를 뛰며 프로볼에 뽑히는 등 대학시절의 이름값을 드디어 하나 했지만... 상대방 수비수와 눈을 순간적으로 마주치는게 무서워서 헬멧 앞에 짙은 색이 들어간 보호경(Visor)를 끼워야 할 정도로 조용하고 소극적이고 수줍은 성격, 고질적인 요통과 심해지는 우울증, 대인기피증에 의해 마리화나에 손을 대게 된다. 약물 검사에서 연달아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2004년도에 1차로 은퇴한 후 인도에서 명상과 요가로 안정을 찾고 2005년도 이제 새 삶을 찾아 복귀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인도에서 처방 받은 대체 의학 약물에 '정체 불명의 환각 성분'이 검출되어 2006 시즌은 통째로 출장 정지(...) 후 캐나다 CFL에서 다시 복귀했으나, 2007년 돌핀스로 돌아와 2009년에는 6년만에 1000야드 러싱을 기록하는 등(가장 1000야드 러싱 기록 복귀에 오래걸린 나름 NFL 기록이다(...))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커리어를 보내고 2012년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NFL에 들어온것을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운동선수들의 정신적 데미지를 상담치료하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프로선수들일 수록 멘탈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어 이후 각 구단에서도 멘탈 상담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28] 1979~1987년까지 버펄로 빌스와 뉴욕 제츠에서 라인배커로 뛰었고, 1980년 올 프로에 선정됐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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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리시버 맨 마지막 항목에서 경기중 핸드폰질로 3만달러 벌금먹은 그 리시버다. 바로 이 장면이 터치다운 세레모니(Touchdown Ceremony)+핸드폰(Cellphone)=CELL-emony라고 조롱받는 그 장면이다.하지만 당시 거진 5할승률 고정팀이었던 세인츠를 이끌었던 팀의 레전드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보였다. 1996년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의 낮은 순위로 캔자스시티 치프스에 지명되었으나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백업을 전전하던 중 2000년도에 뉴올리언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고 나서야 재능에 꽃을 피운 대기만성형 선수. 그의 아들인 조 혼 쥬니어는 지금 노스이스트 미시시피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역시 와이드리시버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30] 버지니아 대학 출신인 그는 그런대로 좋은 대학 성적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팀메이트에 뉴욕 자이언츠의 레전드가 되는 러닝백 티키 바버에 수비진으로는 라인배커 제이미 샤퍼, 제임스 페리어, 코너백 론데 바버 등 이후 프로볼에 단골 선발될 정도의 그야말로 올스타팀이었기 때문에 그의 기록이 다소 저평가된 부분도 없진 않았다.[31] Deuce McAllister. 2016년 현재까지도 프랜차이즈의 러싱 1,429회 러싱 야드 6,096 야드의 기록을 갖고 있는 레전드이다. 여담으로 공식석상에서 등장할때 인익숙한 사람들은 왜 듀스가 등장할때 '우ーーー'하고 야유를 보내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야유 'Booing'이 아니라 그의 이름인 듀ーーーー스 Deuuuuuuuuuuーーーce~! 를 챈트하는 것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것. 다른 팀의 팬들에게도 존경받는 모범적인 선수였다. 비슷한 예로 타팀의 팬들에게도 존경받는 버펄로 빌스의 레전드 브루스 스미스의 경우에도 Bruuuuuuuuuーーーce! 의 챈트를 보내 주고는 한다.[32] 수비진의 갑작스런 난조 외에도 공격진에서도 팀웍이 박살이 나는 일이 생겼으니... 사실 시즌 시작전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전해까지 워싱턴 레드스킨스에서 플레이하며 1999 시즌은 62캐치, 1132야드, 2000 시즌은 39캐치, 762야드를 기록한 스피드스터 리시버 알버트 코넬과의 5년간 14million의 계약이었다. (사인보너스만 해도 2.5million)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첫 11경기 동안 겨우 12캐치를 기록하는데 그치는 그야말로 먹튀였고... 정작 더 큰 일은 팀메이트인 듀스 맥켈리스터의 사물함에서 863달러, 그의 차에서 3500달러를 훔치는게 CCTV에 찍히는 사건이 벌어진 것.(...) 당연히 그 이후로는 팀 내 징계로 출장정지가 되었고 바로 그 해 말에 방출되는 일이 벌어지며 난조의 수비진이 낸 불에 팀웍이 박살난 공격진이 부채질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아후 코넬은 현재까지도 뉴올리언스 팬들이 가장 미워하는 선수의 탑3 안에 꼭 들어갈 정도로 뉴올리언스 팬들에게는 천하의 개쌍놈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33] 여담으로 이 시즌의 뉴욕 제츠전에서 카일 털리에 의한 'Flying Helmet' 세레모니가 있었다. 1998년 1라운드 7번째 픽으로 세인츠에 드래프트된 공격태클인 카일 털리는 2000년에는 프로볼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실력만큼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갖고 있었는데... 문제의 영상. 흥겨운 BGM도 꼭 같이 듣기를 권한다. 상대 4야드 지점까지 애런 브룩스가 러쉬해 들어가자 제츠의 데미언 로빈슨이 브룩스의 페이스마스크를 잡고 (큰 부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최고급의 페널티를 받게 되는 하드파울이다.) 목을 뒤로 꺾는 태클을 하자 털리가 바로 달려 들어 로빈슨의 헬멧을 벗겨 경기장 반대편으로 던져버린 사건이다. 당연히 두 명 모두 퇴장 당했으며 로빈슨은 NFL로부터, 털리는 팀으로부터 벌금을 내야하는 징계 처분을 받게 되고 결국 털리는 2003년 세인트루이스 램스로 트레이드되게 된다. 참고로 위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는 은퇴 이후 컨트리 뮤직 가수로 전업한 카일 털리 본인이 부른 곡으로 제목이 '''''Flying Helmets'''''(...) 본인은 로빈슨이 팀메이트의 목을 부러뜨리려는줄 알았다고. 2016년 지금도 구글에 new orleans saints를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연관검색어는 바로 kyle turley(...) [34] 그 와중에 졸전끝에 처참하게 패하면서도 인터셉션 당할때마다 낄낄거리는 모습이 점점 더 자주 비춰지자 브룩스에 대한 세인츠팬들의 평은 그야말로 부글부글 심지어는 경기중에서까지 이미 팀을 떠나고 없는 이전 시즌의 백업 쿼터백인 제이크 델홈을 찾으며 "We want Jake" 챈트를 관중들이 합창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결국 시즌 마지막 세 경기는 백업이었던 토드 바우먼이 주전으로 뛰게 된다. 2006년 1월 1일 탬파베이에게 여지없이 대패를 당하고 만 시즌 마지막 경기 라커룸으로 향하는 애런 브룩스가 친구와 같이 깔깔거리면서 신나게 웃으며 나오는 장면이 그만 전국방송에 나가게 되자 세인츠 팬들의 불만은 드디어 폭발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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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세인츠는 브룩스에게 방출을 통보하게 된다. 당시 아치 매닝에 이어서 프랜차이즈 패싱 2위 기록을 갖고 있던 짐 하슬렛 시대를 상징하던 쿼터백은 그렇게 팀과 이별을 고했다. 여담으로 세인츠 명예의 전당에도 2014년에야 올라갈 수 있었으니 당시 세인츠 팬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2005년 시즌의 대실패는 애런 브룩스만의 잘못은 아니었던 것이 멀쩡한 홈구장도 없는 홈리스팀에 익숙하지 않은 필드에서 뛰던 주전 러닝백 듀스 맥켈리스터도 5전만에 뻗어버린 탓도 크다. 당시의 갑갑하던 상황에 무기력한 팀과 주변 상황에의 불만이 애런 브룩스를 향해 대폭발한 것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사건 이후 10년이 넘은 후에도 브룩스에 대한 기사라도 나면 댓글로 '''laughing after interceptions.. SUCKS'''의 댓글이 주루룩 달린다(...) [35] 피트 캐롤 감독 아래 USC를 2005년 전미 우승, 2006년 전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년 결승전에서도 다 이긴 경기를 뒤집은 텍사스 대학교의 빈스 영에게 가려졌다. 그러나 USC 재학 시절 부시와 그의 가족들은 무려 29만달러에 달하는 금품(심지어 리무진도 있었다.)을 수수하여 NCAA 사무국의 조사를 받았고 USC는 2005년 전미 우승 및 승리기록 말소, 풋볼팀 장학금 대폭 축소, 벌금 납부 등 중징계를 받았고 팀 전력은 곤두박질쳤다. 하이즈먼 트로피도 반납, 모교에 전시된 유니폼-동상 철거, 10년간 학교 출입 금지 등의 수모를 당했고 2020년 6월 모든 징계조치가 끝나자 모교에 방문했고 용서를 받았다.[36] 이전 에릭 마틴이 갖고 있던 프랜차이즈의 리시빙 기록을 모두 경신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해냈지만 너무나도 조용한 성격에 브리스 버프라는 폄하 아닌 폄하를 들으며 10년간 711 리셉션, 9759야드, 72개의 터치다운 등의 기록을 세웠지만 '''단 한 번도 프로볼에 뽑히지 못했다.''' 탬파베이 버캐니어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존 그루든 감독은 NFL 역사에서 프로볼에 뽑히지 못한 가장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로 평할 정도.[37] 세인츠에서 플레이 하던 당시에는 조 존슨과 윌 스미스에 밀려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패트리어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다. 세인츠에서 얼마나 안습이었냐 하면 한동안 그를 롱스내퍼로 전향시키려는 시도를 했을 정도.[38] 이 곡은 원래는 U2의 디 엣지(The Edge)와 프로듀서 밥 에즈린(Bob Ezrin)이 기획한 캠페인으로, 카트리나 피해로 인해 수장된 뉴올리언스 뮤지션들의 악기를 교체해주는 사업인 'Music Rising'의 기금 마련을 위해 기획된 음반에 수록되었다.[39] 이 펀트 블록 장면은 2012년 재난에 굴하지 않은 뉴올리언스의 강인한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 'The Rebirth'라는 이름의 동상으로 제작되어 현재도 경기장 앞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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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엄청나게 감동적인 스토리를 써내리며 우승했지만, 그 이면엔 현상금 게이트라는 추악한 진실이 있었다.[41] 맥켈리스터는 이후 2010년 1월 슈퍼볼을 앞둔 시점에 팀의 '명예 캡틴'으로 계약하게 되어 이후 슈퍼볼 우승 반지는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팀의 레전드에 맞는 대우를 해준 것.[42] 2013년 필라델피아 이글스에서 칩 켈리를 감독 겸 GM으로 선임하자 '일생동안 본 것 중에 가장 멍청한 계약'이라고 했다가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NFL.com의 애널리스트 본인 맞다. 지금도 heath evans를 구글에 검색해보면 당시 필라델피아 팬들의 조롱과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을 사진이 많이 남아 있다. [43] 백인인데, 일본계 3세 로드니 후지타에게 입양되었다.[44] 이걸로 부족하니까 그렉 윌리엄스 이 인간은 상대선수를 일일히 지목하면서 "(몸싸움하는 척)턱을 주먹으로 박살내라", "저녀석은 다리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쪽을 공격해서 다시 침대로 보내라."라는 식으로.. 게다가 차후 상대 부상정도에 따라 추가 수당을 줬다고하니(예를 들어 몇 경기 결장에는 얼마, 시즌 아웃에는 얼마 이런 식으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45] NFL의 슈퍼스타 쿼터백 페이튼 매닝은 가족력으로 인한 목부상으로 2011년 한해를 통으로 쉬기도 하는 등 목부상으로 인해 몇번 은퇴기로에 설 뻔 했는데, 그 목부상이 처음으로 발생했던 때가 바로 2006년 그렉 윌리엄스가 있을 시기 워싱턴 레드스킨스과의 경기에서 당한 태클때문이다. 이 장면은 영상으로도 있는데, 태클 장면을 보면, 이미 워싱턴의 수비수 안드레 카터(99번)에게 뒤를 잡혀 쌕을 피할수 없는 상태에서, 필립 다니엘스(93번)가 클로스라인수준으로 페이튼의 목에 팔을 휘둘러 페이튼의 몸이 활처럼 꺾이며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진다. 왜 퍼스널파울이 불리지 않았는지 이상할 정도. 이 때문에 이 사건으로 무기한 자격정지를 먹고나서 이때의 행적이 재조명된 그렉 윌리엄스는 두고두고 페이튼 매닝 팬들에게는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다. [46] FOX NFL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47] NFL 조사결과 비협조자로 드러나 사후 징계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2012년을 다 뛰었지만 다음시즌 직전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된뒤 그대로 NFL 커리어가 끝나고 만다. 그리고 3년뒤인 2016년 4월 뉴올리언스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싸움이 붙었다 흥분한 상대 운전자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9시즌동안 세인츠에서 뛰었으며 우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스타 수비수라 팬들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48] 이 때문에 징계 발표일로부터 한 달여 뒤의 NFL 드래프트에 세인츠의 선수 인사를 총괄하는 단장이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안 그래도 후술할 드래프트 픽 박탈 등 때문에 세인츠는 유망주를 뽑기 힘든 상황이긴 했지만...[49] 2012년 1라운드 픽은 이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트레이드해버린 상황이었기에 졸지에 세인츠는 3라운드, 전체 89번까지 신인을 한 명도 지명하지 못하고 손가락 빨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50] 비록 션 페이튼의 감독업무는 정지되었지만...긴 말 않고 이 해 촬영된 세인츠의 연습장의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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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있다.[51] 공석이 된 감독직은 1~6주에는 애런 크로머 공격라인 코치가, 7주부터 시즌 끝까지는 출전정지에서 돌아온 조 비트 수석코치가 대행했다.[52] 참고로 NFC 남부지구는 NFC 1번시드였던 팰컨스가 13승 3패를 기록하고 나머지 세팀이 나란히 7승 9패를 기록했다. [53] 시카고 베어스 항목에 소개된 46 디펜스의 창시자 버디 라이언의 아들이자, 뉴욕 제츠의 헤드코치인 렉스 라이언의 쌍둥이 동생이다. 둘다 수비진 다루는데 있어선 정평이 난 형제.[54] 14주차 경기까지 총실점 397점으로, 2위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보다 40점이나 많다. 이는 평균 30.5점에 해당하며, 2위보다 3점이 높다. 결국 시즌 최종전까지 상대방을 17점 미만으로 묶은 경기는 단 한경기도 없었다(...)[55] 심지어 뉴욕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9실점'''을 하고도 '''52득점'''을 하여 52-49로 간신히 이긴 적도 있다. 참고로 이날 드류 브리스는 터치다운 ''7개'' (인터셉션 1개), 상대편 쿼터백인 일라이 매닝은 터치다운 ''6개'' (인터셉션 없음)를 던져, 한 경기 개인 패싱 터치다운 7개, 한 경기 양 팀 패싱 터치다운 13개라는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56]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18순위에서 세인츠에 입단한 이후 커리어를 내내 세인츠에서만 보낸 수비엔드로 2006년에는 프로볼, 2009년에는 AP All-Pro에도 선발될 정도로 팀 수비의 중추적인 존재였다. 2010년 세인츠의 우승은 그 해 커리어하이를 (13.0쌕) 기록한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다고 여겨질 정도. 필드 안에서도 밖에서도 좋은 리더였고 루이지애나 출신의 부인과 결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에의 애정도 각별하여 세인츠 팬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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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윌 스미스가 10년간 세인츠에서 기록한 67.5쌕 중에 가장 유명한 2010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있었던 벤 로슬리스버거에의 'Climbing'(등반) 쌕 장면. 2013년 새로운 수비 코디네이터로 3-4 디펜스의 신봉자인 랍 라이언이 부임하며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로 보직변경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만 무릎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입게 되어 시즌을 통채로 쉰 끝에 2014년 방출되었다. 이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테스트 후 입단하였지만 무릎 부상이 악화되어 시즌 시작 전 다시 방출, 이후 은퇴하게 된다. 사망 직후 세인츠는 그간의 공로를 기려 2016년 세인츠 명예의 전당 헌액을 결정하였다.[57] 정확히는 5,208야드[58] 현 NFL 기록[59] 이 판정 하나로 세인츠의 승리 확률이 98%에서 78%로 급락했다.[60] 팀의 샐러리캡 운용이 한계에 달하여 이번 시즌 이후 브리스의 은퇴가 사실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 운용이 상당히 빡빡하여 몇 년간의 암흑기가 찾아올 확률이 높다.[61] 앨 마이클스, 크리스 콜린스워스, 리포터 미셸 타포야 등[62] 이 기록은 무려 192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러닝백 어니 네버스가 가지고 있다. 무려 81년만에 나온 대기록.[63] 바이킹스는 57년만에 달갑지 않은 기록을 작성했는데, 한 경기에서 50점 이상 실점한 두 번째 경기가 됐다. 1963년 10월 7일(한국시간)에 애리조나 카디널스를 상대로 56실점을 했다(...).[64] 러싱 85야드 리시빙 20야드[65] 브리스 본인이 직접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계약이 올 시즌 만료되고 현지 전문가들의 예측이나 팀의 상황상 은퇴가 확실시된다.[66] 경기 종료 후 브래디와 인사하고 터널로 들어가다 경기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브리스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67] 2021시즌 샐러리캡 기준은 $180.5M이다.[68] 상기 아치 매닝의 사진에서 입고 있는 저 바지 맞다. 시즌 성적이 저 모냥이니 표정이 매닝 가문 전통의 안습 표정인 것도 이해가 간다.[69] 이 징크스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6 시즌경 부터. NFL 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3rd Jersey를 권장하면서 마땅한 3rd 져지가 없던 세인츠는 대신 검은색 팬츠를 입는 경기가 점차 늘어났고 그러면서 징크스에서부터도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70] 여담으로 NFL 최초의 40대 치어리더는 신시내티 벵골스의 로라 비크마니스가 2009년 40세의 나이로 선발되어 2014년까지 활동한 바 있다.[71] 1년전 마이애미 돌핀스가 존 아워에 의해 95야드 창단 첫 킥오프를 리턴 터치다운으로 연결한 최초기록을 갖고 있었다.[72] 후술할 올프로 키커 몰튼 앤더슨, 오랜기간 팀의 주전이었던 바비 히버트 등의 유니폼은 여지없이 이적 첫해 홈경기 전에 화형식을 당했다(...)[73] 그나마 예외였던 것이 위의 핸드폰 세레모니로 벌금을 물었던 와이드 리시버 조 혼. 2006 시즌 직후 연봉 삭감 요청에 불응하고 팰컨스(!)로 이적했지만 카트리나 재해 당시 발벗고 뛰며 이재민을 도왔던 전력이 있고 그전부터도 지역사회에의 환원활동에도 열심이었다보니 묘하게 팰컨스가 조 혼을 꼬드겨서 데려가더니 못쓰게 만들었다는 쪽으로 여론이 변한 듯(...) . 팰컨스에서 2007-08시즌, 단 1년만을 뛰고 은퇴하자 2010년 세인츠 명예의 전당에 바로 올려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2010년 6월 23일 '레전드 조 혼의 커리어 마지막 팀을 팰컨스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약하고 2일만에 방출하는 과거 세탁을 통해 세인츠에서 은퇴한 레전드로까지 만들어 주었다(...).[74] 현역 1위는 애덤 비나티에리의 306 경기인데 그의 나이는 현재 43세이다. 앞으로 5시즌을 풀로 뛰어야 경신이 가능한데 최근의 비나옹 공 차시는걸 보면 가능할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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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탈을 쓰고 경기장에 나온 한화 이글스 팬들과 비슷한 풍경이다.[13] 대학 풋볼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14] 단 네 시즌만을 세인츠에서 뛰었음에도 이후 듀스 맥켈리스터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팀의 러싱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루키 시즌에는 1674야드를 달려 올해의 신인 상과 프로볼에 뽑히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줄곧 세인츠를 떠나고 싶어해 결국 신인 계약이 끝나자마자 워싱턴 레드스킨스로 이적하여 1987년 슈퍼볼 XXII 우승에 공헌했다. 참고로 루키시즌의 1674야드는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레전드 에릭 디커슨에 이은 2위 기록.[15] 세인츠에서도 주전급 풀백/러닝백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 스카우트와 라디오 해설자로서도 팀에 공헌, 이후 2016년 비극적인 윌 스미스 사건이 일어나 급작스럽게 세인츠 명예의 전당에 등록될 때 같이 입성하게 되었다.[16] 참고로 이들 중 한명인 샘 밀스는 최단신 라인배커로 유명한데 미국식으로는 5피트 9인치, 한국식 미터법으로는 175cm밖에 안된다.[17] Sam Mills. 전형적인 필드 사령관으로 175cm의 다소 작은 체격에도 넓은 시야와 압도적인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미들라인배커. 세인츠에서는 총 4회 프로볼에 선정되었다. 1994년 캐롤라이나 팬서스가 창단되었을때 자유계약으로 이적, 젊은 팀의 리더로 활약하며 1996년에는 37세의 나이로 프로볼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5년 암으로 별세. 이후 캐롤라이나 팬서스는 팀 최초로 그의 번호인 5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18] Pat Swilling 압도적인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전형적인 패스러셔로 세인츠에서는 총 4회 프로볼에 선정되었다. 여담으로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많이 승 없이 패한 선수이기도 하다(...) 플레이오프 통산 0승 6패[19] Rickey Jackson 1981년부터 세인츠에서 뛰어 이미 프로볼에 돔 패트롤 결성 이전에도 선정된 바 있는 스타 선수였다. 세인츠에서는 총 6회 프로볼에 선정되었으며 패스러쉬, 런 스톱, 패스 커버리지까지 그야말로 만능형 아웃사이드 라인배커의 전형. 1989년에는 시즌 직전 오토바이 사고로 턱뼈가 분쇄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초반 두 게임 결장 후 턱에 와이어를 고정하고 특수헬멧을 찬 채로 경기에 출장했다. 이 특수헬멧은 이후 리키 잭슨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세인츠 팀으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2010년)[20] Vaughan Johnson 샘 밀스가 스피드에 지능형이라면 본 존슨은 전형적인 파워형 미들라인배커. 세인츠에서는 총 4회 프로볼에 선정되었다.[21] 이 시기의 주전 쿼터백만 해도 데이브 윌슨 - 바비 히버트 - 빌 월쉬 - 다시 바비 히버트 - 웨이드 윌슨으로 해마다 바뀌었다. 그 이후 1994년에야 로스앤젤레스 램스로부터 그럭저럭 괜찮은 쿼터백인 짐 애버렛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그의 나이 33세...그리고 돔 패트롤은 해체되는 중이었다. 다시 그 이후 후임감독인 마이크 딧카 시대에서도 히스 슐러 - 빌리 조 톨리버로 이어지며 쿼터백 잔혹사를 계속하게 된다. 이 시기 '''그나마''' 가장 오래 해먹은 쿼터백은 바비 히버트(Bobby Hebert)로, 그럭저럭의 게임 매니져 타입 쿼터백이었던 탓에 본의 아니게 자주 까였던 안습의 존재(...) 하지만 이 히버트는 정작 은퇴 후에야 다른 곳에서 세인츠 프랜차이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공헌을 하게 되는데...[22] 팻 스윌링의 빈자리는 1990년 1순위로 입단한 르날도 턴불이 프로볼에 선발될 정도의 활약을 하며 잘 메꿔 주었지만 그는 곧 부상으로 인해 사라지고 만다.[23] 이 팻 스윌링을 트레이드하면서 얻은 1라운드 8순위 드래프트 픽으로 뽑은 것이 공격 태클 '내스티' 윌리 로프Willie Roaf 다. NFL 모든 팀들의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힐 정도의 역대급 태클이었던 그는 세인츠의 소속으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단 두명 중 두번째의 선수이다. (2012년 입성) NFL에서 선정한 All 90년대 팀, All 2000년대 팀에 모두 선발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24] 당시 이 결정은 콜츠 팬들에게서는 엄청나게 야유를 받았지만 결과는 신의 한수. 에드제린 제임스는 콜츠의 모든 러싱 기록을 다 갈아치우는 한편 , 12,000 야드 전진을 역대 최소인 95게임 만에 가장 어린 나이(27세 193일)로 경신하는 등 그야말로 엘리트 러닝백의 커리어를 보냈다.[25] 이는 아직까지도 역대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26] 여담으로 전술한 1979년의 1라운드 키커 드래프트로 흑역사를 썼던 러셀 엑슬레벤 역시 텍사스 롱혼스 출신이다. 아무래도 세인츠와 텍사스 대학교 사이에는 마라도 끼어 있는 듯 하다(...)[27] 리키 윌리엄스는 나름 3시즌 세인츠에 있는 동안 2번이나 1000야드 이상을 달리는 등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2001년도에 이후 세인츠의 통산 러싱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는 듀스 맥켈리스터가 입단하면서 마이애미 돌핀스로 트레이드되게 된다. 마이애미에서는 이적 첫해 1856야드를 뛰며 프로볼에 뽑히는 등 대학시절의 이름값을 드디어 하나 했지만... 상대방 수비수와 눈을 순간적으로 마주치는게 무서워서 헬멧 앞에 짙은 색이 들어간 보호경(Visor)를 끼워야 할 정도로 조용하고 소극적이고 수줍은 성격, 고질적인 요통과 심해지는 우울증, 대인기피증에 의해 마리화나에 손을 대게 된다. 약물 검사에서 연달아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2004년도에 1차로 은퇴한 후 인도에서 명상과 요가로 안정을 찾고 2005년도 이제 새 삶을 찾아 복귀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인도에서 처방 받은 대체 의학 약물에 '정체 불명의 환각 성분'이 검출되어 2006 시즌은 통째로 출장 정지(...) 후 캐나다 CFL에서 다시 복귀했으나, 2007년 돌핀스로 돌아와 2009년에는 6년만에 1000야드 러싱을 기록하는 등(가장 1000야드 러싱 기록 복귀에 오래걸린 나름 NFL 기록이다(...))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커리어를 보내고 2012년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NFL에 들어온것을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운동선수들의 정신적 데미지를 상담치료하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프로선수들일 수록 멘탈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어 이후 각 구단에서도 멘탈 상담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28] 1979~1987년까지 버펄로 빌스와 뉴욕 제츠에서 라인배커로 뛰었고, 1980년 올 프로에 선정됐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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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리시버 맨 마지막 항목에서 경기중 핸드폰질로 3만달러 벌금먹은 그 리시버다. 바로 이 장면이 터치다운 세레모니(Touchdown Ceremony)+핸드폰(Cellphone)=CELL-emony라고 조롱받는 그 장면이다.하지만 당시 거진 5할승률 고정팀이었던 세인츠를 이끌었던 팀의 레전드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보였다. 1996년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의 낮은 순위로 캔자스시티 치프스에 지명되었으나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백업을 전전하던 중 2000년도에 뉴올리언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고 나서야 재능에 꽃을 피운 대기만성형 선수. 그의 아들인 조 혼 쥬니어는 지금 노스이스트 미시시피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역시 와이드리시버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30] 버지니아 대학 출신인 그는 그런대로 좋은 대학 성적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팀메이트에 뉴욕 자이언츠의 레전드가 되는 러닝백 티키 바버에 수비진으로는 라인배커 제이미 샤퍼, 제임스 페리어, 코너백 론데 바버 등 이후 프로볼에 단골 선발될 정도의 그야말로 올스타팀이었기 때문에 그의 기록이 다소 저평가된 부분도 없진 않았다.[31] Deuce McAllister. 2016년 현재까지도 프랜차이즈의 러싱 1,429회 러싱 야드 6,096 야드의 기록을 갖고 있는 레전드이다. 여담으로 공식석상에서 등장할때 인익숙한 사람들은 왜 듀스가 등장할때 '우ーーー'하고 야유를 보내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야유 'Booing'이 아니라 그의 이름인 듀ーーーー스 Deuuuuuuuuuuーーーce~! 를 챈트하는 것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것. 다른 팀의 팬들에게도 존경받는 모범적인 선수였다. 비슷한 예로 타팀의 팬들에게도 존경받는 버펄로 빌스의 레전드 브루스 스미스의 경우에도 Bruuuuuuuuuーーーce! 의 챈트를 보내 주고는 한다.[32] 수비진의 갑작스런 난조 외에도 공격진에서도 팀웍이 박살이 나는 일이 생겼으니... 사실 시즌 시작전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전해까지 워싱턴 레드스킨스에서 플레이하며 1999 시즌은 62캐치, 1132야드, 2000 시즌은 39캐치, 762야드를 기록한 스피드스터 리시버 알버트 코넬과의 5년간 14million의 계약이었다. (사인보너스만 해도 2.5million)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첫 11경기 동안 겨우 12캐치를 기록하는데 그치는 그야말로 먹튀였고... 정작 더 큰 일은 팀메이트인 듀스 맥켈리스터의 사물함에서 863달러, 그의 차에서 3500달러를 훔치는게 CCTV에 찍히는 사건이 벌어진 것.(...) 당연히 그 이후로는 팀 내 징계로 출장정지가 되었고 바로 그 해 말에 방출되는 일이 벌어지며 난조의 수비진이 낸 불에 팀웍이 박살난 공격진이 부채질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아후 코넬은 현재까지도 뉴올리언스 팬들이 가장 미워하는 선수의 탑3 안에 꼭 들어갈 정도로 뉴올리언스 팬들에게는 천하의 개쌍놈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33] 여담으로 이 시즌의 뉴욕 제츠전에서 카일 털리에 의한 'Flying Helmet' 세레모니가 있었다. 1998년 1라운드 7번째 픽으로 세인츠에 드래프트된 공격태클인 카일 털리는 2000년에는 프로볼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실력만큼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갖고 있었는데... 문제의 영상. 흥겨운 BGM도 꼭 같이 듣기를 권한다. 상대 4야드 지점까지 애런 브룩스가 러쉬해 들어가자 제츠의 데미언 로빈슨이 브룩스의 페이스마스크를 잡고 (큰 부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최고급의 페널티를 받게 되는 하드파울이다.) 목을 뒤로 꺾는 태클을 하자 털리가 바로 달려 들어 로빈슨의 헬멧을 벗겨 경기장 반대편으로 던져버린 사건이다. 당연히 두 명 모두 퇴장 당했으며 로빈슨은 NFL로부터, 털리는 팀으로부터 벌금을 내야하는 징계 처분을 받게 되고 결국 털리는 2003년 세인트루이스 램스로 트레이드되게 된다. 참고로 위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는 은퇴 이후 컨트리 뮤직 가수로 전업한 카일 털리 본인이 부른 곡으로 제목이 '''''Flying Helmets'''''(...) 본인은 로빈슨이 팀메이트의 목을 부러뜨리려는줄 알았다고. 2016년 지금도 구글에 new orleans saints를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연관검색어는 바로 kyle turley(...) [34] 그 와중에 졸전끝에 처참하게 패하면서도 인터셉션 당할때마다 낄낄거리는 모습이 점점 더 자주 비춰지자 브룩스에 대한 세인츠팬들의 평은 그야말로 부글부글 심지어는 경기중에서까지 이미 팀을 떠나고 없는 이전 시즌의 백업 쿼터백인 제이크 델홈을 찾으며 "We want Jake" 챈트를 관중들이 합창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결국 시즌 마지막 세 경기는 백업이었던 토드 바우먼이 주전으로 뛰게 된다. 2006년 1월 1일 탬파베이에게 여지없이 대패를 당하고 만 시즌 마지막 경기 라커룸으로 향하는 애런 브룩스가 친구와 같이 깔깔거리면서 신나게 웃으며 나오는 장면이 그만 전국방송에 나가게 되자 세인츠 팬들의 불만은 드디어 폭발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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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세인츠는 브룩스에게 방출을 통보하게 된다. 당시 아치 매닝에 이어서 프랜차이즈 패싱 2위 기록을 갖고 있던 짐 하슬렛 시대를 상징하던 쿼터백은 그렇게 팀과 이별을 고했다. 여담으로 세인츠 명예의 전당에도 2014년에야 올라갈 수 있었으니 당시 세인츠 팬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2005년 시즌의 대실패는 애런 브룩스만의 잘못은 아니었던 것이 멀쩡한 홈구장도 없는 홈리스팀에 익숙하지 않은 필드에서 뛰던 주전 러닝백 듀스 맥켈리스터도 5전만에 뻗어버린 탓도 크다. 당시의 갑갑하던 상황에 무기력한 팀과 주변 상황에의 불만이 애런 브룩스를 향해 대폭발한 것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사건 이후 10년이 넘은 후에도 브룩스에 대한 기사라도 나면 댓글로 '''laughing after interceptions.. SUCKS'''의 댓글이 주루룩 달린다(...) [35] 피트 캐롤 감독 아래 USC를 2005년 전미 우승, 2006년 전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년 결승전에서도 다 이긴 경기를 뒤집은 텍사스 대학교의 빈스 영에게 가려졌다. 그러나 USC 재학 시절 부시와 그의 가족들은 무려 29만달러에 달하는 금품(심지어 리무진도 있었다.)을 수수하여 NCAA 사무국의 조사를 받았고 USC는 2005년 전미 우승 및 승리기록 말소, 풋볼팀 장학금 대폭 축소, 벌금 납부 등 중징계를 받았고 팀 전력은 곤두박질쳤다. 하이즈먼 트로피도 반납, 모교에 전시된 유니폼-동상 철거, 10년간 학교 출입 금지 등의 수모를 당했고 2020년 6월 모든 징계조치가 끝나자 모교에 방문했고 용서를 받았다.[36] 이전 에릭 마틴이 갖고 있던 프랜차이즈의 리시빙 기록을 모두 경신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해냈지만 너무나도 조용한 성격에 브리스 버프라는 폄하 아닌 폄하를 들으며 10년간 711 리셉션, 9759야드, 72개의 터치다운 등의 기록을 세웠지만 '''단 한 번도 프로볼에 뽑히지 못했다.''' 탬파베이 버캐니어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존 그루든 감독은 NFL 역사에서 프로볼에 뽑히지 못한 가장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로 평할 정도.[37] 세인츠에서 플레이 하던 당시에는 조 존슨과 윌 스미스에 밀려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패트리어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다. 세인츠에서 얼마나 안습이었냐 하면 한동안 그를 롱스내퍼로 전향시키려는 시도를 했을 정도.[38] 이 곡은 원래는 U2의 디 엣지(The Edge)와 프로듀서 밥 에즈린(Bob Ezrin)이 기획한 캠페인으로, 카트리나 피해로 인해 수장된 뉴올리언스 뮤지션들의 악기를 교체해주는 사업인 'Music Rising'의 기금 마련을 위해 기획된 음반에 수록되었다.[39] 이 펀트 블록 장면은 2012년 재난에 굴하지 않은 뉴올리언스의 강인한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 'The Rebirth'라는 이름의 동상으로 제작되어 현재도 경기장 앞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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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엄청나게 감동적인 스토리를 써내리며 우승했지만, 그 이면엔 현상금 게이트라는 추악한 진실이 있었다.[41] 맥켈리스터는 이후 2010년 1월 슈퍼볼을 앞둔 시점에 팀의 '명예 캡틴'으로 계약하게 되어 이후 슈퍼볼 우승 반지는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팀의 레전드에 맞는 대우를 해준 것.[42] 2013년 필라델피아 이글스에서 칩 켈리를 감독 겸 GM으로 선임하자 '일생동안 본 것 중에 가장 멍청한 계약'이라고 했다가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NFL.com의 애널리스트 본인 맞다. 지금도 heath evans를 구글에 검색해보면 당시 필라델피아 팬들의 조롱과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을 사진이 많이 남아 있다. [43] 백인인데, 일본계 3세 로드니 후지타에게 입양되었다.[44] 이걸로 부족하니까 그렉 윌리엄스 이 인간은 상대선수를 일일히 지목하면서 "(몸싸움하는 척)턱을 주먹으로 박살내라", "저녀석은 다리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쪽을 공격해서 다시 침대로 보내라."라는 식으로.. 게다가 차후 상대 부상정도에 따라 추가 수당을 줬다고하니(예를 들어 몇 경기 결장에는 얼마, 시즌 아웃에는 얼마 이런 식으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45] NFL의 슈퍼스타 쿼터백 페이튼 매닝은 가족력으로 인한 목부상으로 2011년 한해를 통으로 쉬기도 하는 등 목부상으로 인해 몇번 은퇴기로에 설 뻔 했는데, 그 목부상이 처음으로 발생했던 때가 바로 2006년 그렉 윌리엄스가 있을 시기 워싱턴 레드스킨스과의 경기에서 당한 태클때문이다. 이 장면은 영상으로도 있는데, 태클 장면을 보면, 이미 워싱턴의 수비수 안드레 카터(99번)에게 뒤를 잡혀 쌕을 피할수 없는 상태에서, 필립 다니엘스(93번)가 클로스라인수준으로 페이튼의 목에 팔을 휘둘러 페이튼의 몸이 활처럼 꺾이며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진다. 왜 퍼스널파울이 불리지 않았는지 이상할 정도. 이 때문에 이 사건으로 무기한 자격정지를 먹고나서 이때의 행적이 재조명된 그렉 윌리엄스는 두고두고 페이튼 매닝 팬들에게는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다. [46] FOX NFL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47] NFL 조사결과 비협조자로 드러나 사후 징계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2012년을 다 뛰었지만 다음시즌 직전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된뒤 그대로 NFL 커리어가 끝나고 만다. 그리고 3년뒤인 2016년 4월 뉴올리언스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싸움이 붙었다 흥분한 상대 운전자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9시즌동안 세인츠에서 뛰었으며 우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스타 수비수라 팬들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48] 이 때문에 징계 발표일로부터 한 달여 뒤의 NFL 드래프트에 세인츠의 선수 인사를 총괄하는 단장이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안 그래도 후술할 드래프트 픽 박탈 등 때문에 세인츠는 유망주를 뽑기 힘든 상황이긴 했지만...[49] 2012년 1라운드 픽은 이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트레이드해버린 상황이었기에 졸지에 세인츠는 3라운드, 전체 89번까지 신인을 한 명도 지명하지 못하고 손가락 빨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50] 비록 션 페이튼의 감독업무는 정지되었지만...긴 말 않고 이 해 촬영된 세인츠의 연습장의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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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있다.[51] 공석이 된 감독직은 1~6주에는 애런 크로머 공격라인 코치가, 7주부터 시즌 끝까지는 출전정지에서 돌아온 조 비트 수석코치가 대행했다.[52] 참고로 NFC 남부지구는 NFC 1번시드였던 팰컨스가 13승 3패를 기록하고 나머지 세팀이 나란히 7승 9패를 기록했다. [53] 시카고 베어스 항목에 소개된 46 디펜스의 창시자 버디 라이언의 아들이자, 뉴욕 제츠의 헤드코치인 렉스 라이언의 쌍둥이 동생이다. 둘다 수비진 다루는데 있어선 정평이 난 형제.[54] 14주차 경기까지 총실점 397점으로, 2위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보다 40점이나 많다. 이는 평균 30.5점에 해당하며, 2위보다 3점이 높다. 결국 시즌 최종전까지 상대방을 17점 미만으로 묶은 경기는 단 한경기도 없었다(...)[55] 심지어 뉴욕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9실점'''을 하고도 '''52득점'''을 하여 52-49로 간신히 이긴 적도 있다. 참고로 이날 드류 브리스는 터치다운 ''7개'' (인터셉션 1개), 상대편 쿼터백인 일라이 매닝은 터치다운 ''6개'' (인터셉션 없음)를 던져, 한 경기 개인 패싱 터치다운 7개, 한 경기 양 팀 패싱 터치다운 13개라는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56]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18순위에서 세인츠에 입단한 이후 커리어를 내내 세인츠에서만 보낸 수비엔드로 2006년에는 프로볼, 2009년에는 AP All-Pro에도 선발될 정도로 팀 수비의 중추적인 존재였다. 2010년 세인츠의 우승은 그 해 커리어하이를 (13.0쌕) 기록한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다고 여겨질 정도. 필드 안에서도 밖에서도 좋은 리더였고 루이지애나 출신의 부인과 결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에의 애정도 각별하여 세인츠 팬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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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윌 스미스가 10년간 세인츠에서 기록한 67.5쌕 중에 가장 유명한 2010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있었던 벤 로슬리스버거에의 'Climbing'(등반) 쌕 장면. 2013년 새로운 수비 코디네이터로 3-4 디펜스의 신봉자인 랍 라이언이 부임하며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로 보직변경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만 무릎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입게 되어 시즌을 통채로 쉰 끝에 2014년 방출되었다. 이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테스트 후 입단하였지만 무릎 부상이 악화되어 시즌 시작 전 다시 방출, 이후 은퇴하게 된다. 사망 직후 세인츠는 그간의 공로를 기려 2016년 세인츠 명예의 전당 헌액을 결정하였다.[57] 정확히는 5,208야드[58] 현 NFL 기록[59] 이 판정 하나로 세인츠의 승리 확률이 98%에서 78%로 급락했다.[60] 팀의 샐러리캡 운용이 한계에 달하여 이번 시즌 이후 브리스의 은퇴가 사실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 운용이 상당히 빡빡하여 몇 년간의 암흑기가 찾아올 확률이 높다.[61] 앨 마이클스, 크리스 콜린스워스, 리포터 미셸 타포야 등[62] 이 기록은 무려 192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러닝백 어니 네버스가 가지고 있다. 무려 81년만에 나온 대기록.[63] 바이킹스는 57년만에 달갑지 않은 기록을 작성했는데, 한 경기에서 50점 이상 실점한 두 번째 경기가 됐다. 1963년 10월 7일(한국시간)에 애리조나 카디널스를 상대로 56실점을 했다(...).[64] 러싱 85야드 리시빙 20야드[65] 브리스 본인이 직접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계약이 올 시즌 만료되고 현지 전문가들의 예측이나 팀의 상황상 은퇴가 확실시된다.[66] 경기 종료 후 브래디와 인사하고 터널로 들어가다 경기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브리스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67] 2021시즌 샐러리캡 기준은 $180.5M이다.[68] 상기 아치 매닝의 사진에서 입고 있는 저 바지 맞다. 시즌 성적이 저 모냥이니 표정이 매닝 가문 전통의 안습 표정인 것도 이해가 간다.[69] 이 징크스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6 시즌경 부터. NFL 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3rd Jersey를 권장하면서 마땅한 3rd 져지가 없던 세인츠는 대신 검은색 팬츠를 입는 경기가 점차 늘어났고 그러면서 징크스에서부터도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70] 여담으로 NFL 최초의 40대 치어리더는 신시내티 벵골스의 로라 비크마니스가 2009년 40세의 나이로 선발되어 2014년까지 활동한 바 있다.[71] 1년전 마이애미 돌핀스가 존 아워에 의해 95야드 창단 첫 킥오프를 리턴 터치다운으로 연결한 최초기록을 갖고 있었다.[72] 후술할 올프로 키커 몰튼 앤더슨, 오랜기간 팀의 주전이었던 바비 히버트 등의 유니폼은 여지없이 이적 첫해 홈경기 전에 화형식을 당했다(...)[73] 그나마 예외였던 것이 위의 핸드폰 세레모니로 벌금을 물었던 와이드 리시버 조 혼. 2006 시즌 직후 연봉 삭감 요청에 불응하고 팰컨스(!)로 이적했지만 카트리나 재해 당시 발벗고 뛰며 이재민을 도왔던 전력이 있고 그전부터도 지역사회에의 환원활동에도 열심이었다보니 묘하게 팰컨스가 조 혼을 꼬드겨서 데려가더니 못쓰게 만들었다는 쪽으로 여론이 변한 듯(...) . 팰컨스에서 2007-08시즌, 단 1년만을 뛰고 은퇴하자 2010년 세인츠 명예의 전당에 바로 올려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2010년 6월 23일 '레전드 조 혼의 커리어 마지막 팀을 팰컨스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약하고 2일만에 방출하는 과거 세탁을 통해 세인츠에서 은퇴한 레전드로까지 만들어 주었다(...).[74] 현역 1위는 애덤 비나티에리의 306 경기인데 그의 나이는 현재 43세이다. 앞으로 5시즌을 풀로 뛰어야 경신이 가능한데 최근의 비나옹 공 차시는걸 보면 가능할 듯도 싶다(...)